
소요정(逍遙亭)
함평이씨 정자.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324
.
함평이씨 이종인(李宗仁 1458~1533)이 초동마을에서 태어나 한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낙향하면서 지금 이곳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자손을 낳아 마을이 점차 형성되었다.
이종인(李宗仁)은 마을 안쪽에 자리한 장춘정(藏春亭)의 유충정(柳忠貞: 1509∼1574)의 외할아버지로서 고봉 기대승, 눌재 박상 등과 교류하였으며 영산강의 죽포나루 권역을 중심으로 장춘정과 소요정이 교류공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함평이씨 대동보에 의하면 이종인(李宗仁)의 자는 선지(善之)이고, 호는 소요(逍遙)로 1494년(성종 25년) 무과에 급제하여 1496년(연산군 2년) 대마도치위사장정의 통사관이 되고 이후 함경도우후 만포진첨사, 경상우수사, 전라우수사, 부총관, 함경도북병사, 장흥부사 등을 거쳐 1522년 추자도에 왜변이 있을 때 전라도좌수사가 되어 왜병을 격퇴시킨 후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요정을 짓고 여생을 보내다가 1533년(중종 28)에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자는 수 차례 퇴락과 중수를 거듭해오다가 1865년(고종 2)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정자 안에는 기정진(奇正鎭)과 장헌주(張憲周가 쓴 「소요정중수기逍遙亭重修記」가 있고, 기대승(奇大升), 박상(朴祥), 김선(金璇), 임제(林悌), 임억령(林億齡), 박창수(朴昌壽), 이탁헌(李鐸憲), 백광훈(白光勳), 이민유(李敏裕), 이돈면(李敦冕), 이용헌(李龍憲), 이돈화(李敦華), 기학경(奇學敬), 이원서(李源緖), 이장헌(李璋憲), 이돈룡(李敦龍) 등 당대의 명유(名儒)들과 후손들의 시(詩)가 있습니다.
이후 이종인(李宗仁)의 손자였던 죽담(竹潭) 이유근(李惟謹 1523~1546)은 1523년 나주 초동(草洞) 마을에서 태어나 1561년 문과에 급제하고 당시 동향선배인 사암(思庵) 박순(朴淳)이 사림영수(士林領袖)가 되어 송강(松江) 정철(鄭徹)과 같이 이끌어 벼슬이 예조정랑(禮曹正郞)에서 지제교(知製敎)를 지내고 서장관(書狀官, 외교사절)으로 북경에 다녀온 후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을 지내다 1573년 대구부사(大邱府使)가 되어 선정을 베푸니 청백리(淸白吏)로 명성이 높았으나 조정에서 당쟁이 심해 향리로 돌아와서 소요정(逍遙亭)에서 백호(白湖) 임제(林悌), 고봉 기대승,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 등 제현들과 세상을 등지고 종유(從遊)했다.
박개(朴漑: 1511~1586)가 이유근(李惟謹)이 택가의 서당에 이르러 시를 보내며 초청하기에 가서 이렇게 회답하며 시(大均到擇可書堂 以詩見邀 往奉和呈)를 남겼다.
관련유적으로 소요정 뒷뜰에 충열각(忠烈閣)이 있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비를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옥사한 후 숙종조에 충신으로 추증된 증형조판서 이지효와 이억종의 처 진주강씨를 모신 충열각(忠烈閣)이 있습니다.
- 웹사이트 -

소요정 입구에서...

소요정 삼문.

소요정 전경.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정면을 유리창으로 장식해 두었다.

소요정 현판.

소요정 대청.




안쪽에서 바라본 소요정 삼문.
보수가 시급해 보인다.

소요정 전경.
정자 정면을 유리창으로 장식해두니 볼품이 별로인 것 같다.
20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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