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나주. 석관정(石串亭) 함평이씨 정자.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

백산(栢山) 2020. 7. 17. 09:00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石串歸帆) 표석비.

 

 

 

전남 나주시 다시면 석관로 578 (동당리 845)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石串歸帆)

 

 

함평이씨 정자.

 


황포돛배와 영산강 절경을 볼 수 있는 석관정.

 

 

영산강 물줄기가 죽산보를 지나 더 내려가면 영산강과 고막천이 합류하는 곳에 석관정(石串亭)이 있다.

석관이란 바위가 뛰어나온 돌곶을 한자어로 표현한 말이다.

 

석관정 아래 이별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전쟁 때마다 장정들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남편이나 연인을 따라왔다가 넓어진 강을 더 이상 건너지 못하고 이별하거나 강물에 투신했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동당리 석관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편이 바로 금강정이 있는 공산면 신곡리다.

조선시대에는 동당리와 강건너 신곡리를 오고가는 나루가 있었는데, 이를 '석관정 나루'라고 불렀다.

 

4대강 사업으로 나루터도 복원되어 지금도 조그만 나룻배는 건너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산강 우안(右岸)에 자리 잡은 석관정 주변은 강변을 따라 자전거길이 목포까지 이어져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 웹사이트 -

 

 

영산강 제3경 석관귀범 이야기 나루 이정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줄기를 바라보며 산중턱으로 오르니 석관정이 드러난다.

 

 

 

 

 

 

석관정(石串亭)

 

 

석관정(石串亭)은 함평이씨 정자이고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는 동백나무가 많이 있다고 해서 동백정(冬柏亭), 동백촌(冬柏村)이라고 부르고 있는 동백마을에 있는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1480년이다.

석관정 나루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강 건너편의 산중턱에 지어진 금강정이 가장 좋다.

 

이 정자는 1480년(성종 11)에 함평이씨 이극해(李克諧 1431~1511)가 인수정(仁壽亭)이라는 이름의 4칸 규모 정자를 지었고, 1530년 경 이극해의 증손인 신녕현감 이진충(李盡忠 호.石串)이 정자를 보수한 후 자신의 호(號)를 따서 석관정(石串亭)이라 개칭하여 이곳에서 후학과 소요자적하며 만년을 보냈다.

 

이후 1597년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고 1755년 이진충의 7대손 참판공 이시창(李時昌)에 의하여 보수되었고, 1800년(정조 24)과 1870년(고종 7)경 13대손 이춘헌(李春憲)이 중건되었으며, 수 차례 중보수에 이어 지다가 1998년 석조건물로 개축했다.

1906년 방손이었던 이탁헌(李鐸憲 1842~1914)이 중수하고 석관정기에서 "금산 아래에서부터 영강의 언덕에 이르는 약 이사(二舍), 60리 정도 거리에 좌우로 둘러있는 아주 뛰어난 봉밀수석(峰密水石)의 맑은 경치가 있기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전래의 만은 명정(名亭)이 없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어 일대에는 많은 정자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현재 정면 2칸·측면 2칸 규모이며, 내부에 '완산 이승구(1860) 등의 석관정기(石串亭記)'를 비롯한 기문과 다시면 영동리 출신 여력재(餘力齋) 장헌주(張憲周 1777~1867)등의 시문을 적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 웹사이트 -

 

 

석관정 현판.

 

 

 

 

석관정기.

 

 

석관정 중수기 / 후손 광헌.

 

 

 

 

 

 

우측으로 여력재 장헌주의 차운 시문 현판이 걸여있다.

 

 

 

 

 

 

석관정 연혁기.

 

 

 

 

1999년 4월 4일에 세워진 11. 12. 13대 국회의원 이재근 님의 중건기념식수비.

 

 

석관정.

 

 

202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