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백산(栢山) 2020. 10. 12. 09:00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2001년 9월 27일 지정)

 

 

이 묘역은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도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을 비롯한 전사자들의 무덤들로 모두 232기이다.

 

 

전남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 117-3외
(오일시길 100)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진도는 정유재란 때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전개되어 가장 큰 희생이 있었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16일 명량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해버려 우수영과 진도는 왜군의 침략을 받았다. 당시 진도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다. 명량해전 때 전사한 진도사람 중 관군으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조응량 등 8명이다.

 

고군면 도평리 묘역 일원에는 정유재란 때 전사한 진도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명신(命新·선무원종공신), 박헌(朴軒·병조참판증직), 김성진(金聲振·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순직), 김홍립(金弘立) 등이 묻혀있다.

 

이 묘역 지대는 벽파진이나 명량진에서 15리 거리이며 창군 당시인 1440년대는 이곳 토반인 창녕조씨와 김해김씨들에게 하사된 땅이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사에 기록할만한 역사적인 해전이었다. 이때 대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도력으로 칭송을 받아왔으며 몇몇 사족들의 순절이 문중족보나 호남절의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견주어 이름 없이 종군했던 현지 향민들의 공헌이나 순절은 거의 무시되어오고 있다.

 

이 묘역에 묻힌 많은 봉분 중 창녕조씨나 김해김씨 등 진도 내 토반 씨족 인물들 16기 이외에는 주인 없는 무덤들이다. 이곳 묘역은 이름이 밝혀진 분묘의 주인공들로 보아 임진·정유 양란의 희생자 묘역임이 분명하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정유재란 순절묘역 안내문.

 

 

정유재란 순절묘역 이정표지판.

 

 

정유재란 순절묘역 사당.

 

 

 

 

 

  사당에서 바라본 정유재란 순절묘역.

 

 

     유인창녕조씨지묘.

 

 

정유재란 순절묘역.

 

비석도 없는 무명의 묘들이 즐비하다.

 

 

 

 

비석이 오래 세월의 풍상에 마모되어 읽기가 어렵다.

 

 

김해김공시탁

배 평강채씨 지묘.

 

*이런 비석의 묘소는 최근에 세워진 것들이다.

 

 

 

 

김해김공량엽

배 유인밀양박씨 지묘.

 

 

 

 

 

 

  비석의 글자는 알아볼 수가 없고 벌초도 안 되어있다.

 

 

20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