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진도. 진도향교와 단군전

백산(栢山) 2020. 10. 14. 09:00

 진도향교 홍살문.

 

홍살문은 보수 중이어서 2015년 3월에 촬영했던 것을 올립니다.

 

 

진도향교 (珍島鄕校)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1985.02.25. 지정)

 

 

전남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교길 68-5 (교동리 275)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진도향교는 조선 세종 20년(1437) 처음 지었으나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버렸다. 그 뒤 인조 원년(1623)에 다시 세웠고 효종 7년(1656)에 지금 자리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앞쪽에는 교육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7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높은 축대 위에 세웠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이 외에도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작은 규모의 동무·서무가 있고,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서재, 출입문인 내·외삼문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진도향교는 진도읍의 중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1.5㎞정도 떨어진 교동리에 위치한다. 원래 진도향교는 진도창군 당시인 세종 20년(1437)에 처음 성(城) 동쪽에 건립되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성종 6년(1475)에 옛터였던 오리정 부근으로 옮겨졌다.

 

그 후 중간연혁은 밝혀지지 않으며 정유재란 때 왜적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다. 그 후 인조 원년(1623)에 가서야 읍성의 남쪽에 대성전과 동·서재를 지어 위패(位牌)를 봉안하였고 이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뒤에야 현재의 위치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현재 위치로 이건·중수한 연대에 대해서는 약간 착오가 있어 명확하지 않으나 효종 7년(1656)이었다고 추측된다. 숙종 15년(1689)에 명륜당과 동·서재가 개수되고 제기고(祭器庫)·포재소(포宰所)·대문 등이 함께 조성되었다.

 

약 1,000여 평의 대지위에 돌담으로 둘러져 있는 경내에는 「전학후묘」의 배치기법으로 각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을 3단으로 정지(整地)한 후 대성전은 2m 높이의 막돌 축대 위에 조영되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두지 않는 맞배집이다.

 

양박공면에는 바람막이 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을 겹처마로, 추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 구조이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가구는 전·후방 퇴주 사이에 안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우고 대량을 걸은 5량형식이다.
동무과 서무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3량구조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인 동재·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교직사로 이용되고 있는 서재와 내,외삼문이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진도향교 표지석.

 

 

진도향교 비석군.

 

 

삼강비.

 

삼강비 안내문.

 

 

진도향교 외삼문.

 

 

진도향교 안내문과 안내도.

 

 

진도향교 안내문.

 

 

진도향교 안내도.

 

 

명륜당.

 

 

명륜당 현액.

신안 주희 서,로 되어있다.

 

 

서재.

 

 

동재.

 

 

외삼문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前 전교공덕비가 즐비하다.

 

 

내삼문.

 

 

대성지성문선왕비.

 

 

대성전.

 

 

 

 

동무.

 

 

  서무.

 

 

   진도향교  바로 옆 단군전의 입구 개천문.

 

 

  단군상.

 

 

단군성조숭모비.

 

 

 국조단군성조 부흥기념탑.

 

 

단군전(檀君殿)

 

 

단군전.

 

 

20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