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장성. 하서 김인후 난산비(河西 金麟厚 卵山碑)

백산(栢山) 2022. 4. 27. 09:00

하서 김인후 난산비(河西 金麟厚 卵山碑) 전경.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1호.

 

 

*소재지: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105번지.

 

 

김인후(金麟厚, 1510~ 1560)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 담재(湛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김인후 난산비는 김인후(1510∼1560)가 매년 조선 12대 인종의 기일(忌日)인 7월 1일 맥동마을 난산(卵山)에 올라 북망통곡(北望慟哭)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호패형의 일반형 석비로 전면 상단에 전서로 횡서로 '난산지비(卵山之碑)', 첫줄에 종서로 '난산비(卵山碑)'라 제하고, 이어 찬자(윤행임)와 서자(이익회)를 쓰고 비문을 적고 있다. 비문은 비의 제목을 포함하여 모두 31행(전 10행, 좌 5행, 후 10행, 우 6행), 1행 26자이다. 비문은 석재 윤행임(1762∼1801)이 짓고, 이익회(1767∼1843)가 글씨를 썼다.

 

끝 부분에 추기가 있는데 '영력 사계묘 윤정현 근지(永曆 四癸卯 尹定鉉 謹識)'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헌종 9년(1843)에 윤정현(1793∼1874)이 추기하고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윤정현은 난산비의 원비문을 지은 윤행임의 아들이다.

 

장성 김인후 난산비는 김인후가 인종 승하시 망곡한 것(망곡단)을 기념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김인후의 행적과 정신을 알 수 있으며 국상(國喪)에 따른 당시 제도사를 알 수 있는 등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김인후 난산비 안내문.

 

김인후 난산비각.

 

김인후 난산비.

 

호패형의 난산비 상단에 卵山之碑라 새겨져 있다.

 

호패형의 일반형 석비로 전면 상단에 전서로 횡서로 '난산지비(卵山之碑)', 첫줄에 종서로 '난산비(卵山碑)'라 제하고, 이어 찬자(윤행임)와 서자(이익회)를 쓰고 비문을 적고 있다. 비문은 비의 제목을 포함하여 모두 31행(전 10행, 좌 5행, 후 10행, 우 6행), 1행 26자이다. 비문은 석재 윤행임(1762∼1801)이 짓고, 이익회(1767∼1843)가 글씨를 썼다.

 

측면에서 본 난산비.

 

뒷면에서 본 난산비.

 

김인후 난산비각.

 

난산비 뒷편 언덕 위의 통곡대.

 

김인후(1510∼1560)가 매년 인종의 기일(忌日)인 7월 1일 맥동마을 난산(卵山)에 올라 북망통곡(北望慟哭)했던 통곡대.

 

통곡대.

 

통곡대에서 바라본 난산비.

 

*김인후 난산비는 울산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다녀온 날: 2016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