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신안. 우봉 조희룡 적거지(又峰 趙熙龍 謫居址)

백산(栢山) 2022. 5. 25. 09:00

우봉 조희룡 기념비(又峰 趙熙龍 記念碑)

 

 

*소재지: 전남 신안군 임자면 이흑암리 741.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서기 1789(정조13)~1859(철종 10)

 

본관은 평양. 자는 치운, 호는 우봉(又峰석감(철적(鐵笛호산· 단로(丹老매수. 중인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1846(헌종 12)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을 탐승하고 시를 지어 바쳤으며, 1848년에는 궁궐편액의 글씨를 쓰라는 명을 받았다. 1851(철종 2) 김정희(金正喜) 일당으로 지목되어 임자도로 유배되어 약 3년간 이흑암리에서 생활했다.

 

섬 생활은 그의 예술세계가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어 기량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매화에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접목시킨 용매화를 더욱 발전시켰고 임자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 괴석도’ ‘묵죽도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처럼 유배지에서의 심정과 풍경을 그린 작품도 남아있다.

 

또한 임자도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산문집 화구암 난묵시집 우해악암고편지글 수경재해외적도그림이론서 한와헌제화잡존등이 있다.

 

조희룡의 제자가 된 임자도 사람 홍재욱(洪在郁)과 주준석(朱俊錫)이 집필을 도왔는데 섬사람들과의 교류 당시 생활양상, 예술적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대에는 이학전(李鶴田이재관(李在寬) 등과 교유했으며, 1847년에는 유최진(柳最鎭전기(田琦) 등과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고 김정희파의 여항문인 서화가들과 시··화를 통해 교유했다. 김정희의 문하에서 학문과 서화를 배우고 19세기 중엽 화단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다. 고서화와 함께 골동품을 좋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회화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나라 화적을 직접 소장하고 비평을 하는 등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간송미술관)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인전기집인 호산외사 壺山外史, 귀양시의 기록인 해외난묵 海外蘭墨, 회고록인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등이 있다.

 

 

- 본문은 우봉 조희룡 적거지와 웹사이트 글을 재구성함 -

 

 

조희룡 기념비에 대한 안내문.

 

 

만구음관(萬鷗唫館)

 

조희룡에 대한 안내문을 새겨논 석조물.

 

 

조희룡 기념비에서 좌측으로 50미터에서 바라보이는 적거지(지붕이 초가형식으로 보이는 집)

 

 

마을로 들어서면 적거지 바로 앞에 우봉 조희룡 적거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봉 조희룡 적거지 표지석.

 

 

적거지 표지석 옆로 들어서는 길목.

 

 

화장실도 말끔하게 설치되어 있다.

 

 

조 선생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묵죽도.

 

 

국화도.

 

 

매화도.

 

 

방운림산수도.

이외 작품은 생략하기로 함.

 

 

우물 터.

 

 

유배 당시의 적거지.

 

 

적거지 : 만구음관(萬鷗唫館)

 

 

당호: 만구음관(萬鷗唫館)

 

일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짖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만구음관(萬鷗唫館)'

 

조희룡이 유배살이 할 시기에는 수많은 갈매기들이 흔하게 날라 왔을 것 같다.

 

 

부엌.

 

 

기거했던 방(방은 2개 있음)

 

 

적거지(만구음관)

 

 

만구음관 뒤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이흑암리 마을 앞 풍경.

 

지금은 염전이 들어서 있지만 일제강점기시절까지도 바다였으리라 사료된다.

 

 

 

*우보 조희룡 미술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녀온 날: 2022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