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나주. 쌍계정(雙溪亭). 전남 유형문화재 제34호.

백산(栢山) 2023. 9. 4. 05:00

나주. 쌍계정(雙溪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1973.04.21)
 
 
*소재지: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251.
 
 

쌍계정(雙溪亭)은 1280년에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전고(典故)에 밝아 세자이사(世子貳師)와 세자사(世子師) 등을 역임하였던, 문정공(文靖公) 정가신(鄭可臣,?~1298)이 당시 호남의 현사(賢士)로 알려진 문숙공(文肅公) 전주정(全周鼎), 문현공(文顯公) 윤보(尹珤) 세 사람이 함께 지어 강학처(講學處)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삼현당(三賢堂)이라고도 불렀으며, 그후 조선 세조 때부터 선조 때까지 정서(鄭鋤), 신숙주(申叔舟), 신말주(申末舟), 죽오당(竹梧當), 김건(金鍵), 홍천경(洪千璟) 등, 당시 대표적인 학자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도 이용되었고, 또한 쌍계정은 규약을 정하여 미풍양속을 지키도록 행하는 계회(契會)와 시회(詩會)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쌍계정(雙溪亭)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정자 주위에는 대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우거져 정취를 한층 높여주고 있어 조선시대 대표적 정자(亭子)로 손꼽히고 있다. 편액의 글씨는 한호(韓濩)가 쓴 것이라고 한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나주 쌍계정 안내판.
 
 

금안동 동계 소장 일괄문서 안내판.
 
400년간 이어온 대동계는 나주정씨, 하동정씨, 풍산홍씨, 서흥김씨의 4성 문중이
주축이 되어 운영해오고 있다.
 
 

보호수 (푸조나무)
 
쌍계정 앞에는 400여년이 넘은  푸조나무와,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치있게 어울려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보호수 안내판.
 
 

쌍계정.
 
 

쌍계정.
 
 

쌍계정에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쌍계정 현판.
 

정자에는 2개의 쌍계정(雙溪亭) 현판이 있어, 마루 앞의 현판이며 현판 2개의 글씨는 모두 한석봉(韓石峯)으로 더 많이 알려진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글씨라 하며, 쌍계정(雙溪亭)의 이름은 금성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정자의 좌우로 계곡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 졌다고 합니다.

 
 

쌍계정 현판.
 

마루 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쌍계정(雙溪亭) 현판으로, 전면에 있는 현판과 같이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서체(書體)를 확립했던 조선시대 서예계에서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이다.

 
 

쌍계정 중수기.
 

쌍계정(雙溪亭)의 마루에서는 기문(記文)과 정가신, 정서, 홍천경이 지은 시문(詩文)을 볼 수 있으며, 정자의 700년의 역사를 대변해 주듯 쌍계정 중수기(雙溪亭 重修記)의 편액만 5기가 있습니다.

 
 

 
 

 
 

 
 

 
 

사성강당(四姓講堂)
 

사성강당(四姓講堂)의 현판도 볼 수 있어, 정가신(鄭可臣)의 후손인 나주정씨, 정서(鄭鋤)의 후손인 하동정씨, 김건(金鍵)의 후손인 서흥(瑞興)김씨, 홍천영의 후손 풍산홍씨 등의 사성(四姓)이 이 정자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어, 1957년에는 이들이 뜻을 합하여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정자 내에 잠자리로 사용한듯한 돗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정자 내에 냉장고와 대형 선풍기도 설치되어있다.
 
 

보호수 (느티나무)
 
쌍계정 뒤쪽으로 수령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노거수)가 지켜보고 있다.
 
 

보호수 안내판.
 
 

쌍계정 뒷편에서 본 모습.
 
 
 
*2023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