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장흥. 장흥위씨. 죽천사(竹川祠) 청계공 사우.

백산(栢山) 2023. 11. 24. 05:00

 

장흥. 죽천사(竹川祠)

 

 

죽천사(竹川祠)는 장흥위씨 청계공(聽溪公) (휘: 덕의:諱: 德毅)을 주벽으로 임진왜란 때 功이

크신 휘 덕원, 휘 덕화를 비롯하여 휘 정훈, 휘 정철, 휘 정명, 휘 백규 등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주소: 전남 장흥군 관산읍 죽교리 418 (관산로 18-84)

 

 

 

장흥위씨 청계공(聽溪公) 
 
휘: 덕의(諱: 德毅: 21世, 1540~1613) 진사(進士) 곤(鯤)의 子, 참봉(參奉) 진수(晉秀)의 손자(孫子)는 선조(宣祖) 1573년(癸酉)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호는 동호(桐湖) 또는 청계(聽溪)로 임란(倭亂) 때 왕이 피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흥에서 90일 간 걸어서 의주(義州 또는 龍灣) 행재소(行在所)에서 임금을 알현하니 군신(君臣) 모두가 놀라 마지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명(明)의 장수(將帥) 려응종(呂應鍾)은 공을 보고 "동국(東國)의 산(山)은 천관산(天冠山)이 있고, 사람은 위덕의(魏德毅)가 있어 보배롭다"고 했다. 왕이 귀경한 후 공에게 영남(嶺南) 운향관(運餉官)을 제수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이어 호종(扈從)의 공으로 진원현감(珍原縣監)에 제수해도 취임하지 않으니 호종원종훈(扈從原從勳)에 록(錄)하고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贈職) 됐다. 졸 후 1806년 죽천사(竹川祠) 입사(立祠)와 함께 주벽(主壁)으로, 광산 대촌 황산사(黃山祠)에 배향됐다.

 

 


- 웹사이트 -

 

 

 

요월문(邀月門) 외삼문.

 

석촌(石邨) 윤용구 선생이 썼다.

 

 

 

양춘재(陽春齋) 강당.

 

강당 양춘재(陽春齋)는 1917(丁巳)년 춘헌공(위계반)의 주도로 5칸 건물로 신축하였다.

주로 청계공의 묘각과 후학강학 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별도로 춘헌공, 중와공(위홍량) 부자의 서재로 이용되었다.

액호(額號) 편액 글씨는 송촌리 평촌마을 태생 소석(小石) 김노현(광산人)이 썼다.

 

 

 

양춘재.

 

 

 

양춘재(陽春齋) 편액.

 

소석(小石) 김노현(광산人)이 썼다.

 

 

 

죽천사 묘정비.

 

죽천사 묘정비(廟庭碑)는 2009년(己丑) 6월 만취(晩翠) 위계도 선생의 문하생 현재(弦齋) 김영웅(광산人 1947년생, 한학자 광주시 거주) 근찬(謹撰)하다. 청계공 11대손 덕운 황량 근서(謹書)하다. 황량, 경량이 삼가(謹竪)세웠다.

 

 

 

 

 

 

 

 

 

 

 

 

경의문(景義門) 내삼문.

 

 

 

죽천사(竹川祠) 사당.

 

 

 

죽천사(竹川祠) 편액.

 

역수헌(亦睡軒) 윤용구 선생이 썼다.

 

 

 

죽천사 사당.

 

 

 

 

2023. 10.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