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정(潘溪亭)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성내마을에 있는
나주나씨 문중의 정자이다.
*주소: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785-1번지.
이 정자는 조선 중기에 정유왜란 피난 때 이곳에서 초막을 짓고 지낸 은둔소로 사용하였다.
세월이 흘러 퇴락하자 나주나씨 후손들이 1905년 중건하였다.
정자는 단층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재실형(齋室形) 정자로, 내부에 나덕현(羅德顯)의 후손 나공한(羅珙漢), 나도기(羅燾琪) 등 10여 명이 쓴 시(詩)가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당시 백양동(白羊洞)에 정착한 입향조 나주나씨(羅州羅氏)의 반계(潘溪) 나덕현(羅德顯: 1565~1625)은 나주에 살다가 처가인 이 마을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나주나씨는 나주시에서 사마시 합격자가 제일 많은 63명이 배출되는 성씨이기도 하다.
그는 왜구들이 호남에 난입한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지방사 연구에 자료가 되고 있는 금호유사(錦湖遺事)로 잘 알려진 통훈대부 나성현감(尼城縣監) 금호(錦湖) 나사침(羅士沈 1525~1596)의 넷째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미암 박희춘, 율곡 이이와 사암 박순(朴淳 1523~1589)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제자였던 인물이다. 또 최홍우(崔弘宇)· 정식(鄭湜)· 유양(柳瀁)· 윤제(尹濟)· 정지함(鄭之諴)과 함께 성리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의약· 복서(卜筮) 등의 잡학에 능했던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제자로 학식이 풍부했다.
그는 정유재란 때 어머니를 모시고 영암 은적산에 피난 때 왜적을 만났으나 어머니를 지켜냈고 인조 때 참봉에 이르렀다. 처 하동정씨는 정유재란 때 적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열녀이다. 1661년(현종 2년) 장려가 내려졌다.
효자 나사침과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 때 큰 공을 세웠으며 강화총어사(江華統禦使) 등을 지냈으며 사후 병조판서에 증직된 그의 여섯 아들 중 여섯째 충렬공(忠烈公) 나덕헌(羅德憲)을 나주시 남내동 4-2번지에 있는 금호사(錦湖祠) 사당에 배향하고 있다.
- 웹사이트 -
반계정.
반계정 판액.
반계정 복원기.
나주나씨 반계정 복원개요.
복원찬조자 방명록.
시문 현판.
반계정.
대청.
대체로 관리가 잘 되어있다.
반계정 뒷편으로 나주나씨들의 묘소가 안장되어있다.
나주나공 정한지묘.
나주나공 사집지묘.
나주나씨 묘역.
묘봉들을 말끔하게 손질을 해두어 보기에 편하다.
*다녀온 날: 202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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