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추모역사관.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1879년 9월 2일(음력 7월 16일) 출생.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안태훈(본관: 순흥), 어머니 배천조씨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어려서 아명은 안응칠.
(現: 황해도 해주시 광석동)
집안의 가세는 수 천석을 하던 해주의 대지주였다.
*소재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 -110 (만년리 599)
죽산안씨 문중의 유림 안홍천 선생(1895~1994)이 순흥안씨 후손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아 전국 어디서도 안중근 의사의 제향을 지내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를 지내는 공간을 만수사 옆에 해동사로 이름하여 마련하였다.
그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장흥군은 해동사를 역사문화체험 교육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2017년 안중근 의사 문화관광자원개발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2019년부터 2024년 3월까지 애국 탐방로(진입로)와 추모역사관 및 추모공원을 완료하였다.
2024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4주기에 맞춰 개관한 추모역사관은 안중근 의사의 나라 사랑 정신을 가슴속에 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충의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출처] 안중근 의사 추모역사관과 해동사.



안중근 추모역사관 입구.

안중근 추모역사관 현판.

종합안내와 안중근 추모역사관 건립 취지 안내판.
추모역사관 건립 취지
우리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조국에 모셔 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지낼 수 있는 공간인
해동사가 있다는 것이다.

대업을 위한 8일간의 준비과정, 하얼빈 의거현장, 수감이후 평화의 메시지까지
안의사의 일대기를 만나볼 수 있다.






대업을 위한 안중근의 8일.
1909.10.19 ~ 1909.10.26.

하얼빈에 울려퍼진 정의의 총성.
1909.10.26.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30분 하얼빈 역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등박문에 명중하고 동시에 안중근의 ‘코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하얼빈 역에 울렸다.
대련 뤼순구 관동법원에서 6차례의 공판을 거쳐 1910년(31세)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를 포기하고 「동양평화론」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 저술에 몰두했다.

그는 두 아우에게 “내가 죽은 뒤에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을 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라고 유언했다.
3월 26일 10시 15분 순국하셨다.
반장(返葬) :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서 장사를 지내다.


독립운동을 함께한 태극기.


영원히 빛나는 대한의 별이 되다.
1910.03.26.




역사공원.
황병필의 작품 「안중근」은 안중근의 초상 및 철학을 결합하여 캘리그라피로 표현한 작품이다.
메모리얼 파크에 2024년 3월 26일 설치된 「하늘과 땅에 맹세하다」 상징 조형물은
조각가 최선진 작가가 황병필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영감을 얻어
안중근과 12인의 동의단지회를 재해석하여
탄생시킨 작품으로 「안중근 추모 역사관」 의 개관과 함께 설치되었다.

역사공원 종합 안내판.





안의산 홍천 추선기적비.
해동사 건립에 앞장 서서 노력하신 안홍천 선생의 기적비.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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