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설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백산(栢山) 2025. 7. 12. 05:00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가락국 제9대 숙왕(肅王) 때 남대정동(南大政洞)에 사는 출정승과 북대사동(北大寺洞: , 대성동)에 사는 황정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기로 약속했다.

이후, 황정승은 아들 황세를 낳고 출정승은 딸 여의를 낳았다.

그러나 황정승의 집안이 어려워지자 출정승은 마음이 변하여서 자신은 아들을 낳았다고 속였다.

 

자라면서 여의(如意)는 사내 옷을 입고 서당에 다녔는데, 이것을 수상하게 여긴 황세(黃洗)는 개라암(황세바위)에 올라 '오줌 멀리 가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자 여의(如意)는 바위 뒤로 돌아가 마침 그곳에 있는 삼대로 오줌을 누어서 낭패를 면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어느 여름. 거북내(龜川)에서 미역을 감게 되자. 여의(如意)는 더 이상 여자란 사실을 숨길 수가 없게 되어 편지를 물에 거슬러 띄어 보내어 황세(黃洗)에게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고, 출정승도 결국 황세(黃洗)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으로 믿고 혼약을 맺어주었다.

 

얼마 후, 신라군이 침범을 받게 된 가야국의 황세(黃洗)는 전장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고 개선하게 되었다. 이에 숙왕(肅王)은 황세(黃洗)에게 하늘장수라는 장군 칭호를 제수하고, 자신의 외동딸인 유민(流民)공주와 혼례를 시켜 부마로 삼는다.

 

여의(如意)의 부모는 파혼 당한 여의(如意)낭자에게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를 권유하지만 낭자는 끝내 부모의 뜻을 거부하다가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그만 죽고 말았다. 공주와 혼인한 황세(黃洗) 또한 여의(如意)낭자를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으로 그 해에 역시 죽고 말았다.

 

그러자, 가야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슬퍼하였다고 하며, 둘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어린 시절 자주 뛰어놀던 개라바위가 작은 바위를 얹어놓아 황세돌, 여의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개라바위가 봉황대에 있는 황세바위이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이 1975년 여의낭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여의각(如意閣)이라는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 여의각은 현재 봉황동유적 내의 가야주거군 뒤편에 위치해 있다.

 

사실 이 설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바로 숙왕의 딸인 유민공주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인 숙왕의 명에 따라 시집을 가게 되었으나 늘 다른 여자만을 그리워하는 황세장군과의 혼인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황세장군이 결국 죽게 되고, 이에 유민공주는 크게 슬퍼하면서 세상이 덧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임호산에 들어가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런 공주의 이름을 따서 유민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 전설과 관련된 곳으로는 여의낭자가 죽어서 혼이 들어갔다고 전해지는 하늘 문이라고 불리는 돌문이 있고, 황세장군과 여의낭자가 약혼한 후 처음으로 놀았다는 평평한 바위인 여의좌(如意座), 그리고, 망견대(望見臺), 여의목(如意木), 황세목(黃洗木), 소변 터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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