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 6

전남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기념물 제4호.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기념물 제4호.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전경.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안내문. 이 비(碑)는 조광조(1482 ~ 1519) 선생이 기묘사화로 인하여 유배 왔던 이곳에서 사사(賜死) 당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을 왕 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僞勳削除)] 등 개혁을 단행하다가 중종 14년(1519)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1개월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 후 현종(1667) 당시의 능주목사인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이 비를 세워 선생의 넋을 위로 하고 그 뜻을 되새기게 하였다. 외삼문 애우당(愛憂堂) 전경..

문화재 탐방 2025.01.17

광주 북구. 환벽당(環碧堂) 명승 제107호.

광주. 환벽당(環碧堂) 명승 제107호. (2013.11.06. 지정)  환벽당(環璧堂)은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나주목사를 그만두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낸 정자로써 김덕령의 조부 김윤효(金允孝)의 동생이다. 김덕령 장군이 어릴 때 김윤제에게 글을 배우던 곳이며, 송강 정철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환벽당길 10)    우암 송시열 선생이 썼다는 환벽당(環碧堂) 현판.  환벽당(環璧堂)은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

문화재 탐방 2019.08.12

전남 강진. 남강서원(南康書院) 전남 유형문화재 제154호.

강진 남강서원 외삼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1987.06.01)  전남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교촌리)     남강사 주자갈필목판 안내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1987.06.01)   강진향교에서 200여m 떨어진 남강사 내의 어필각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이다. 본래 남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생들에 의해 순조 3년(1803)에 창건된 건물이다.  우암이 기사환국과 관련하여 제주로 유배되어 가던 중 폭풍으로 인하여 강진 성자포(지금의 남포)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인접한 백련사에 잠시 머물면서 유생들에게 강론을 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련사에 영당(남강사의 전신)을 건립한 것이 오늘날의 남강서원이 건립된 배경이 되었다. 현재 보존된 ..

문화재 탐방 2017.10.02

전남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필암서원 홍살문과 확연루. 사적 제242호.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번지.    필암서원은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

문화재 탐방 2016.05.19

전남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각 전경. 기념물 제4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안내문.  이 비는 조광조(1482 ~ 1519) 선생이 기묘사화로 인하여 유배 왔던 이 곳에서 사사당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을 왕 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僞勳削除)] 등 개혁을 단행하다가 중종 14년(1519)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1개월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 후 현종(1667) 당시의 능주목사인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이 비를 세워 선생의 넋을 위로 하고 그 뜻을 되새기게 하였다.   애우당(愛憂堂)   애우당(愛憂堂) 편액.   애우당의 시문 편액.   애우..

문화재 탐방 2016.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