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19

전남 장흥. 장흥위씨. 근암고택(勤庵古宅) 전남 민속자료 제46호.

근암고택(勤庵古宅) 전남 민속자료 제46호. (2010. 8. 27) *소재지: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04. 안항(顔巷) 위덕후(1556~1612)는 1578년 인근 당동마을에서 방촌리로 최초 입촌하였다. 병조참판 만회재 위정철(1583~1657)이 1600년 초에 입촌하면서 장흥위씨 씨족마을이 융성되기 시작하였다. 위덕후의 장자 성균진사 청금 위정훈(1578~1662)은 1644년 만포진첨절제사로 퇴직하고 귀향한 종제 만회재 위정철의 주선으로 아우 웅천현감 위정렬(1580~1656) 등 3분이 국풍(지관) 이의신(해남 출신)을 대동하고 천관산에 올라 자신의 집터와 아우의 집터(지금의 존재고택)를 잡았다. 그 후 1649년(己丑) 청금 위정훈은 집을 신축하면서 방촌마을 남산에 위치했었던 장춘대(長..

문화재 탐방 2023.11.15

전남 장흥. 장흥위씨. 존재고택(存齋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61호.

존재고택(存齋古宅) (2007.01.29) 구, 위계환 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161호. (1984.01.14) *소재지: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길 91-32 (방촌리 476) 존재고택(存齋古宅)은 장흥위씨 웅천공파(熊川公派)의 종택(宗宅)으로 방촌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위의 경치가 아름다워 특히 여름철을 시원하게 보내기에 적당한 집이다. 바깥마당에는 연못이 있으며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앞에 안채가 높이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으로 대문간이 있으며 안마당 북쪽에 헛간채가 있고, 남쪽으로 서재가 있다. 안채 동쪽에는 여러 단의 계단을 올라서서 사당채가 있다. 대문은 중심부에 대문간과 방이 있고 좌우에 헛간이 있다. 문간채의 우측에는 서재가 아주 작고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져 ..

문화재 탐방 2023.11.13

전남 장흥. 방촌유물전시관(傍村遺物展示館)

방촌유물전시관. *주소: 전남 장흥군 관산읍 장흥대로 1645. 호남 실학의 대가 존재 위백규 선생의 유물과 장흥위씨 집성촌으로 고려 말 고읍지였던 방촌 마을의 유물을 보존 관리하기 위하여 방촌유물전시관을 설립하여 2005년 9월 6일 개관하였다. 방촌유물전시관에는 농경과 주거, 음식과 복식문화, 놀이문화, 세시풍속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다. - 백과사전 - 방촌유물전시관 방문 시 장흥위씨 종친이시며 장흥문화해설사로 활동하시는 위성(魏聖) 선생님을 만나 장흥위씨와 방촌리 연혁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을 듣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방촌유물전시관. 목사골 회주방촌. 표지석. 전통민속마을. 표지석. 방촌 전통민속마을 관광 안내도. 방촌유물전시관 입구. 제1 전시실(생활도구와 고지도 속의 방촌마을) 전..

발길을 따라 2023.11.10

전남 장흥. 장흥위씨. 석천사(石川祠)

장흥. 석천사(石川祠) 전경. 임진왜란의 명장 위대기(魏大器) 장군의 사당.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행원1길 119 (행원리 197) 임진왜란의 명장 위대기(魏大器) 장군. 위대기 장군(1559 ~ ?)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자용(子容)이며 장흥읍 행원리에서 태어나 7년 간의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장흥을 빛낸 분이다. 그는 장흥위씨로 고려 때 문화시중을 지낸 위계정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선전관을 지낸 위원신이고 아버지는 위문보로 참판을 증직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몸집이 커 키가 6척이 되었고 남달리 총명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면 늘 대장노릇을 했다. 무예에도 뛰어나 창과 칼을 다루는 솜씨..

발길을 따라 2022.02.14

전남 장흥. 장흥위씨. 영귀정(詠歸亭)

장흥위씨. 영귀정(詠歸亭) *소재지: 전남 장흥군 유치면 송정리 산 90-9. (장흥대로 4886) 영귀정(詠歸亭)은 장흥댐의 건설로 이전하기 전에는 유치면(有治面) 단산리(丹山里)의 마을 앞 강 건너 봉명산(鳳鳴山) 산자락에 있었으나 댐의 건설로 유치면 송정리(松亭里) 산 90-9번지로 옮겨져 있다. 영귀정이 1895년 이전에 창건되었지만 장흥위씨 복재(復齋) 위계민(魏啓玟, 1858~1925)이 1923년에 다시 지은 정자라고 하겠다. 기우만(奇宇萬) 복재기(復齋記)가 1903년의 것이며 영귀정의 상량문 가운데 1921년의 것도 있다. 복재 위계민은 선고(先考)인 손암공(遜菴公) 위준권(魏準權)의 유택을 산정(山頂)에 모시고 그 아래에 터를 닦은 지 4년만인 계해(癸亥, 1923)에 다시 정자를 세웠..

발길을 따라 2021.09.10

전남 장흥. 장흥 향토문화재 제16호. 경호정(鏡湖亭)

장흥. 경호정(鏡湖亭) 경호정은 장흥위씨 정자로써 '저존각' 바로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 향토문화재 제16호. (2018.11.30) *소재지: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기동길 68(기동리 700-3) 경호정 안내문. 경호정(鏡湖亭)은 기동마을이 장흥위씨(長興魏氏)들의 세거지(世居地)가 되기까지 운암(雲巖) 위덕관(魏德寬)이 1593년에 이곳 기동마을에 입향(入鄕)하여 은거하면서 행의(行義)를 하였기에 그 후손들이 대대로 정주하였으며, 1593년 운암이 이곳에 입향하여 마을을 기동이라 이름짓고 정자를 지어 경호정이라 하였다. 그 후 후손인 육화당(六和堂) 위세한(魏世翰)이 이곳을 풍영지소(風詠之所)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후에 경호정이 퇴락하여 없어지자 운암의 10대손 행은(杏隱) 위계훈(魏啓勳, 1..

문화재 탐방 2021.09.06

전남 장흥. 장흥위씨. 저존각(著存閣)

장흥위씨. 저존각(著存閣) *소재지: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기동길 68 (기동리 241) 저존각(著存閣)은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탐진강변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사우로써 외삼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자리잡고 있으며, 담장 밖 동쪽에는 유허비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리고, 경내의 서쪽 언덕 위에는 탐진강을 품은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 누각인 경호정이 자리잡고 있다. 장흥위씨 입향조인 21세 운암공 위덕관이 기동에 보금자리를 잡은 것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이다. 이곳에 터를 정한 이후 400년을 내려오면서 운암공 후손들은 크게 번창하였다. 하지만 매년 시제가 되면 다른 문중들처럼 참여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게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선조들의 제사를 한꺼번에 모시기 위한 '저존각'..

발길을 따라 2021.09.03

전남 장흥. 백산재(栢山齋) 장흥위씨 사우

장흥. 백산재(長興. 栢山齋)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 (2009.03.20) 전남 장흥읍 평화리 69 (외평길 168) 장흥 백산재(栢山齋)는 문중재실이다가 장흥위씨(長興魏氏)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霞山祠)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 조선후기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2차 이건을 통해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건 과정에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다. 백산재(栢山齋)는 건축 부재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인 19세기경의 건물로 보인다. 하산사(霞山祠)로 불리던 사당이 최근에 회주사(懷州祠)로 바뀌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본 건물은 비록 이축과정에서 다소 변형된 구조 기법을 보이기는 하나 넓은 대청과 온돌방 등 조선후기 ..

발길을 따라 2020.08.07

전남 장흥. 광산김씨. 괴음각(槐蔭閣)

장흥. 괴음각(槐蔭閣) 전남 장흥군 용산면 금곡길 6-21 (금곡리 335) 장흥군 용산면 금곡길 6-21에 자리한 제각 괴음각(槐蔭閣)은 영광김씨 금곡파 종중 소유이다. 괴음각을 들린 것은 애당초 여곡재를 가려고 했던 것인데 도로변에 자리하여 눈에 쉽게 띄기에 이곳이 여곡재인 것으로 오인하여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괴음각(槐蔭閣)은 월봉(月峰) 김광원(金光遠, 1478~1550)의 7대손 김심(金沁, 1659~1737)의 3칸 제각으로 영광김씨 금곡파 종중 소유이다. 1963년(癸卯) 3월 2일 건립하였다. 후손들은 매년 김심 이하 선조 6位에 대해 陰 10월 제향을 봉행한다. 액호 편액에 글쓴이의 이름, 낙관 등을 남기지 않았으나, 후손의 언동에 의하연 동곡(東谷) 김준식(金駿植, 영광人, 1888~..

발길을 따라 201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