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경호정(鏡湖亭)
경호정은 장흥위씨 정자로써 '저존각' 바로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 향토문화재 제16호.
(2018.11.30)
*소재지: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기동길 68(기동리 700-3)
경호정 안내문.
경호정(鏡湖亭)은 기동마을이 장흥위씨(長興魏氏)들의 세거지(世居地)가 되기까지 운암(雲巖) 위덕관(魏德寬)이 1593년에 이곳 기동마을에 입향(入鄕)하여 은거하면서 행의(行義)를 하였기에 그 후손들이 대대로 정주하였으며, 1593년 운암이 이곳에 입향하여 마을을 기동이라 이름짓고 정자를 지어 경호정이라 하였다.
그 후 후손인 육화당(六和堂) 위세한(魏世翰)이 이곳을 풍영지소(風詠之所)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후에 경호정이 퇴락하여 없어지자 운암의 10대손 행은(杏隱) 위계훈(魏啓勳, 1866~1942)이 1912년에 선조의 공적을 추모하는 뜻에서 선조의 유장지(遺庄地)인 경호상(鏡湖上) 석대(石臺) 위에 정자를 새로 짓고 정명(亭名)을 경호정이라 하였다.
이곳에 정자를 짓게 된 동기는 이러하였다. 이곳은 우선 운암공의 유장지이었다. 또한 이곳은 육화당(六和堂) 위세한(魏世翰)과 백우당(百憂堂) 세빈(世彬)이 화목하게 살면서 학문에 힘쓰고 같이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 선생 문하(門下)에서 수업을 한 터이자 만수재(晩守齋 이민기(李敏琦), 용호당(龍虎堂) 김세장(金世長), 연거처사(淵居處士) 백후채(白後采) 등과 교유하면서 음풍영월(吟風詠月)을 한 곳이었다.
이런 경호(鏡湖)의 한 구비를 지켜 이어가고자 행은(杏隱) 위계훈(魏啓勳)은 증조부 죽와(竹窩) 위영질(魏榮質)이 계획해놓고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경호정을 세웠다.
행은 위계훈이 경호정을 세운 이래 1964년에 회은(晦隱) 위원량(魏元良)의 송암정(松岩亭)이 현 위치로 이건(移建)되어 문중의 소유가 되었다. 그 결과 이건(移建)한 송암정으로 새로 중수한 경호정 또한 운암공파(雲岩公派)의 종중(宗中) 소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집에 목조 팔작기와지붕이며 전형적인 정각(亭閣)의 형태를 지녔다. 중앙에 2칸(二間) 방을 들이고 옆으로 대청을 두었으며 퇴칸에는 모두 툇마루를 둔 정자다. 건물의 현재 상태는 양호하다.
정자 내부에는 경호정기(鏡湖亭記), 경호정상량문(鏡湖亭上樑文), 경호정중건기(鏡湖亭重建記)를 비롯하여 현판이 19매가 걸려 있다.
경호정은 경호(鏡湖)의 티 없이 맑은 물과 대상(臺上)에 자리잡은 위용(偉容)이 주위의 노송(老松)과 어울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 웹사이트 -
운암거사 유장비 헌성.
경호정.
경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집에 목조 팔작기와지붕이며 전형적인 정각(亭閣)의 형태를 지녔다.
중앙에 2칸(二間) 방을 들이고 옆으로 대청을 두었으며 퇴칸에는 모두 툇마루를 둔 정자다.
건물의 현재 상태는 양호하다.
경호정 현판.
또 하나의 현판. 영이루(泳而樓)
경호정 중건기.
경호정 앞으로 탐진강이 흐르고 있다.
*다녀온 날: 2021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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