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박씨 5

전남 영암. 육우당 & 구림대동계사.

영암. 함양박씨. 육우당(六友堂) 영암 육우당과 구림대동계는 담장 하나사이로 맞붙어 있다.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3 (남송정길 10) 육우당(六友堂)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로서 박흡(朴洽) 장군이 지은 정자이다. 박흡 장군의 자는 여윤(汝潤),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증손이다. 구림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익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 등 여러 곳에서 큰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남송정 마을 내 도로변에 위치한 육우당은 함양박씨(咸陽朴氏) 박준을 비롯한 여섯 형제가 담소를 나누며 즐기는 장소로 1474년에 건립되었으나, 현재 있는 건물은 소실된 후 대략 300년 전인 1730년대에 중건되었다..

발길을 따라 2021.11.15

전남 영암. 함양박씨. 간죽정(間竹亭)

함양박씨. 간죽정(間竹亭)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403 (죽정서원길 19) 간죽정(間竹亭)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亭子)로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 1418~1487)이 1479년(성종 10)에 관직에서 물러나 처(妻)의 고향인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구림 마을에 정착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박성건은 간죽정에서 인근의 선비들을 교육하였다. 간죽정은 창건된 뒤 1571년(선조 4), 1768년(영조 44), 1899년(고종 36), 1970년 총 네 차례 중수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에 중수된 것이다. 간죽정은 3m 정도의 잡석 축대 위에 정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간죽정 안에는 창건자 박성건이 지..

발길을 따라 2021.11.08

전남 영암.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4 (마당바우로 114-7)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후손으로 문규원(文奎源)의 처(妻)가 되어 정성껏 시부모를 봉양하고 종인(宗人)들의 모범이 되었다. 1854년(철종 5)에 박씨가 나주의 친정에 가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박씨는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을 참고 정성껏 3년 상을 치렀다. 그 후 목욕재계하고 9일 동안 단식한 끝에 절명하였다. 당시 순상(巡相)이던 서상정(徐相鼎)이 조정에 보고하여 1871년(고종 8)에 나라에서 정려하였다. - 영암문화원 -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남평..

발길을 따라 2021.09.29

전남 영암. 함양박씨. 죽정서원(竹亭書院)

죽정서원(竹亭書院) 외삼문 숭봉문(崇奉門)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죽정서원길 19 (죽정서원) 죽정서원(竹亭書院)은 영암군 군서면 서호정 마을 한적한 곳에 있다. 1681년 박성건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그 후 박권, 박규정, 이만성, 박승원 등이 봉안되어 현재는 모두 5위를 제향하고 있다. 박성건은 '금성별곡'을 지은 국문학사상의 중요한 인물이며, 장수현감을 지내고 고향인 구림에 돌아와 후손의 교육과 향촌의 교화에 힘썼던 사람으로 선비들 사이에 널리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사우에는 박성건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박권·이만성·박규정·박승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례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함양박씨 문중서원으로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향례..

발길을 따라 2021.03.15

전남 영암. 함양박씨. 아천정(鵝川亭)

아천정(鵝川亭) 전경.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주암길 44.  아천정(鵝川亭)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자로서 함양박씨 아천공(鵝川公) 박응원(朴應元)[1552~?]의 정자이다. 박응원은 성균관 생원을 지냈으며 특히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아천정이 세워진 시기는 아천공이 생존하던 16세기 후반이었으나, 현존 건물은 아천공의 10대 후손인 박동섭(朴東燮)이 1921년에 새로 중건한 것이다. 중건 당시 기존 정자의 모습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번와와 낡은 부재 정도만 교체하였는지 아니면 내부 평면까지 모두 바꾼 신축 개념으로 새로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천정은 비록 뛰어난 인물과 관련된 정자는 아니지만 45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

발길을 따라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