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함평. 자산서원(紫山書院)

백산(栢山) 2014. 11. 28. 10:54

 

자산서원(紫山書院) 입구.

 

 

주소: 전남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 555.

지번: 전남 함평군 엄다면 곤재로 688.

 

 

자산서원(紫山書院)은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있는 서원으로써 조선 중기 호남 사림을 이끌었던 정개청(鄭介淸, 1529~1590 본관: 고성)과 참봉을 지낸 그의 동생 정대청(鄭大淸)을 배향하고 있다. 정개청이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인들이 스승의 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1616년 건립하였다.


1678년 조정으로부터 자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훼철과 복설(復說)을 되풀이하였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5차례의 훼철을 당하였고 8·15해방 이후 1957년에 복설된뒤 1988년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된 정개청 문집 《곤재 우득록(愚得綠)》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정개청은 자 의백(義伯), 호 곤재(困齋)이고 본관은 고성으로 나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이후 절에 들어가 유학, 천문지리, 약학, 산수, 역학 등을 공부하여 학문의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41세에는 지금의 제동마을에 윤암정사를 짓고 학자들과 교류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590년 기축옥사로 함경도 경원 아산보에 유배되었다가 병사하였다. 그의 문집 《우득록》은 호남 사림의 인맥과 동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자산서원 관리소.

 

 

자산서원 곤재 우득록 목판 설명문.

 

 

 

 

 

 

곤재 우득록 목판 안내판.

 

 

곤재 정개청 시비(困齋 鄭介淸 詩碑)

 

詠懷 (영회)  회포를 읊음  /  병자(丙子) 1576년 8월 9일 씀.

 
三椽茅屋一枷書 (삼연모옥일가서)   오막집 한 시렁에 가득 쌘 책만 읽다가
百歲人生半世餘 (백세인생반세여)   백년도 한 인생 반이 흘렀네.
心上經綸賢聖事 (심상경륜현성사)   마음 위에 품은 뜻은 현성의 일 뿐인데
世間無望冒簪 (세간무망모잠거)   세상 사람 귀현(貴顯)함을 바라봄이 없소이다

 

 

대도문(大道門) 외삼문.

 

자산서원 관리사에서 대도문에 이르기까지 고성 정씨들의 묘소와 각종 공덕비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대도문(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겸허문(내삼문)이 보이며 좌측으로 자산서원 당우, 우측으로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뒤로 자산서원 묘정비가 자리하고 있다.

 

 

자산서원(紫山書院) 강당.

 

앞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양쪽 끝은 방으로 되어있다.

 

 

유물관(遺物館)

 

<곤재 우득록 목판>은 잔남 유형문화재 146호로 지정된 귀중품이기에 이 유물관에 보관 중인데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관계로 실물을 직접 볼 수 없어 촬영할 수가 없었다,

 

 

자산서원묘정비(紫山書院廟庭碑)

 

 

겸허문(謙虛門) 내삼문.

 

 

곤재 정개청을 모신 윤암사(輪巖祠)

 

겸허문을 들어서면 곤재 정개철을 모신 윤암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1689년에 동생 정대청(鄭大淸)을 추가 배향하였다는데.

사당은 문이 잠겨 내부를 살펴 볼 수 없었다.

 

 

 

탐방: 2014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