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

백산(栢山) 2014. 12. 19. 11:32

 

 

정유재란 순절묘역 이정표.

 

주소: 전남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 117-3외.

새길주소: 전남 진도군 오일시1길 100.

문화재 자료 제216호.

지정일 2001년 9월 27일.

 

 

정유재란 순절묘역.

 

진도대교를 지나 줄곧 18번도로를 따라가다 세동삼거리에서 오일시방면으로 진행하다보면 길 좌측으로 정유재란 순절묘역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고 바로 뒤로 사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당 뒷편 언덕을 이룬 산에 꽤많은 무덤이 소리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정유재란 순절묘역이다.

 

 

아래 글은 진도군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진도는 정유재란 때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전개되어 가장 큰 희생이 있었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16일 명량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해 버려 우수영과 진도는 왜군의 침략을 받았다. 당시 진도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다. 명량해전 때 전사한 진도사람 중 관군으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조응량 등 8명이다.

 

고군면 도평리 묘역일원에는 정유재란 때 전사한 진도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명신(命新·선무원종공신), 박헌(朴軒·병조참판증직), 김성진(金聲振·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순직), 김홍립(金弘立) 등이 묻혀있다.

 

이 묘역 지대는 벽파진이나 명량진에서 15리 거리이며 창군 당시인 1440년대는 이곳 토반인 창녕 조씨와 김해 김씨들에게 하사된 땅이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사에 기록할만한 역사적인 해전이었다. 이때 대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도력으로 칭송을 받아왔으며 몇몇 사족들의 순절이 문중족보나 호남절의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견주어 이름 없이 종군했던 현지 향민들의 공헌이나 순절은 거의 무시되어오고 있다. 이 묘역에 묻힌 많은 봉분중 창녕 조씨나 김해 김씨 등 진도 내 토반씨족 인물들 16기 이외에는 주인 없는 무덤들이다. 이곳 묘역은 이름이 밝혀진 분묘의 주인공들로 보아 임진·정유 양란의 희생자 묘역임이 분명하다.


 

 

옆에서 본 모습.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에 대한 안내문.

 

 

순절묘역 사당.

 

 

  우측에서 본 모습.

 

 

새길주소가 오일시1길 100으로 되어있다.

 

 

답사: 2014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