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강진. 창녕조씨. 효정재(孝亭齋)와 대계사(大鷄祠)

백산(栢山) 2015. 4. 17. 10:58

 

 

강진 효정재(孝亭齋) 전경.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7호.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계율길 31-7(대구면 계율리 717)

 

 

효정재는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 717번지에 있는 건물로 창녕조씨 37世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이 세웠다.

조몽린(曺夢鱗)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그의 부친인 조일상(曺一相)이 서재동(西齋洞) 초당(草堂)에서 거처하고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기 위해 현 장소에 가정자(假亭子)를 지어 기거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효정(孝亭)'이라 하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계사(大鷄祠)의 강당(講堂)으로 쓰이고 있다. 그간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는데, 최근 1982년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정면 5칸에 양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상태는 양호하며 최근에 써 붙인 표구된 현판에는 효정재(孝亭齊)라 하고 있다.

 

1850년 1월 대계사(大鷄祠)를 창설하여 수운 조정통(水雲 曺精通)과 그의 아들 봉강 조응룡(鳳岡 曺應龍), 청간 조한룡(淸簡 曺漢龍)을 모시다가 1860년에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을 추배하고 동쪽 방은 강당(講堂)으로, 서쪽 방은 서당(書堂)으로 1960년대까지 사용했다.

 

1899년 청명절(4.5)에 기우만(琦宇萬 1838-1916)이 효정기(孝亭記)를 짓고 1982년 8월에 기와로 바꾸어 덮었다.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7호로 지정된 효정재는 5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효정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이에 후손들이 지난 1888년 다시 복원하고 증축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효정재에서 보관된 서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홀기(제사 때 순서를 적은 글)등이 그대로 보전돼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어 기나긴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효정재(孝亭齋) 현판.

 

 

 

효정재(孝亭齋) 뒷면.

 

 

 

효정재(孝亭齋)에서 바라본 대계사(大鷄祠)

 

 

 

대계사(大鷄祠) 입구 삼문.

 

입구에 대계사신실중건비(大鷄祠神室重建碑)가 세워져 있다.

 

 

 

대계사(大鷄祠) 입구에 창녕조씨 2세 효행비가 세워져 있다.

 

 

 

계호 조선생 몽린 효행비가 세워져 있다.

 

 

 

취정당 창녕조공 상철공적비.

 

 

 

대계사(大鷄祠) 안내판.

 

 

 

대계사(大鷄祠) 안내문.

 

 

 

대계사(大鷄祠) 삼문.

 

 

대계사(大鷄祠)

 

 

 

대계사 앞에 서있는 보호수.

 

 

 

보호수 안내문.

 

 

 

탐방: 2015년 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