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진도. 남도석성(南桃石城) 전남문화재 사적 제127호.

백산(栢山) 2015. 10. 12. 09:40

 

 

남도석성 남문 전경.

 

 

전남문화재 사적 제127호.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294번지.

 

 

남도 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함으로써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 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 - 중종 연간에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종 - 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석성 본래의 규모는 그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그러나 영조때 석축 둘레 1,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성지가 거의 원형적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 서문, 남문 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다.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남도석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석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진도군청 홈페이지 -

 

 

 

쌍운교.

 

 

 

단운교.

 

 

 

쌍운교와 단운교 안내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진도 남도석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개울인 세운천을 건너는 2개의 무지개 다리이다. 남도석성(사적 제127호)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단운교는 옆에서 볼 때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 위에는 흙을 돋우고 잔디를 심었다. 길이 4.5m, 너비 3.6m, 냇바닥에서 다리 중앙부위까지의 높이 2.7m로 작은 규모이다. 이 지방에 흔한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다리의 아치 윗부분에는 편마암질의 돌을 판석 형태로 사용하고 아랫부분에는 윗부분에 사용된 돌보다 약간 큰 강돌을 사용하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아치 부분인데, 다듬지 않은 납작한 모양의 돌을 세로로 세워서 불규칙하게 아치형태로 돌려 쌓았다.

 

단운교에서 약 40m 가량 떨어진 쌍운교는 개울의 너비가 단운교보다 넓어 쌍무지개 형식으로 만든 점이 단운교와 다르다. 단운교와 마찬가지로 편마암질의 다듬지 않은 돌과 강돌로 쌓아 만들었다.

 

단운교가 세워진 시기는 1870년 이후로 생각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쌍운교는 주민들에 의해 1930년 즈음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이 두 다리는 비록 규모는 작으나 단아한 멋이 있고,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투박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서민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남도석성 남문.

 

 

 

남문.

 

 

 

 

 

 

성벽.

 

 

 

 

 

 

관아(동헌) 터.

 

 

 

관아(동헌) 터.

 

 

 

 

 

 

 

 

 

서문.

 

 

 

남도석성 만호비군.

 

 

 

남도석성 만호비 안내문.

 

 

 

서문.

 

 

 

2015년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