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보성. 화산재(華山齋)

백산(栢山) 2015. 12. 3. 09:00

 

보성 화산재(華山齋)

 

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303.

 

보성을 빛낸 인물들.

 

백발의 의병장.

 

죽천(竹川) 박광전(1526~1597)

 

"호남은 평소 문헌의 땅으로 불려왔는데,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학문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람은 오직 하서(김인후), 고봉(기대승), 일재(이항), 미암(유희춘), 그리고 나의 스승 죽천(竹川)이 있을 뿐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며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우산 안방준 선생이 박광전의 문집인 《죽천집》에 쓴 글이다. 여기서 그가 스승이라 지칭한 이가 바로 선조 때 대 유학자로서 광해군의 사부를 지낸 죽천 박광전 선생이다.

 

중종 21년(1526) 보성군 조성면 용전리에서 태어난 죽천은 정암 조광조의 절친한 벗인 양응정과 퇴계 이황으로부터 학문을 사사했다. 미암 유희춘은 호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인 죽천을 전라도 관찰사로 추천했다.

 


의로운 백성들이여, 분발하라.

 

죽천의 나이 67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이때는 이미 관직을 은퇴하고 고향인 보성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국가가 위난에 휩싸이자 뿔뿔이 흩어져 제 살 길을 찾아가는 마당에 야인 신분이었던 죽천은 몸소 700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보성군 미력면 덕림리 우와실 대룡산 기슭에 자리했던 용산서원은 대원군 때 철폐되었고 1987년 용산서원 유허비가 세워져 그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겸백면 사곡리에는 죽천의 묘와 재사인 화산재(華山齋)가 있다. 노동면 광곡리 화전봉 기슭에 위치한 죽천정(竹川亭)도 그가 남긴 각종 시문과 함께 학문적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저서로는 《죽천집》이 있다.

 

 

- 웹 사이트 -


 

문강공 죽천 박선생 유적 안내문.

 

 

헌성비(獻誠碑)

 

 

화산재(華山齋)

 

 

화산재 현판과 죽천선생 제실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방치되어 있는 비석.

 

 

화산재 뒷편에 있는 건물인데 용도가 궁금하다.

 

 

죽천 박선생 묘소.

 

산재에서 뒷산으로 잠시 오르면 묘소가 있다.

 

 

죽천 박선생과 배우자 정부인 문씨와 합장 묘소이다.

 

 

죽천 박선생 묘소 앞의 문인석과 동자석 등 석물들.

 

註: 보성군 노동면 광곡리에 위치한 죽천 박광전 선생의 죽천정(竹川亭)은 다음 장으로...

 

 

탐방: 2015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