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화순. 영벽정(映碧亭)

백산(栢山) 2016. 3. 10. 09:30

 

 

영벽정(映碧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 산1번지.


 

영벽정을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양팽손(1488∼1545)과 김종직(1431∼1492)의 시로 미루어 조선 전기 관청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 10년(1632)에 능주목사 정연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고쳐지었다고 전하며, 고종 9년(1872)에 불타 버린 것을 고종 10년(1873)에 새로 고쳐지었다. 이후에도 보수를 거듭해 오다가 1920년에는 주민들이 모은 비용으로 손질하여 고쳐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는데 3겹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둥근기둥(두리기둥)을 세워 마루를 깔았고 마루의 사방에는 조각한 난간을 돌려 장식하였다. 정자 안쪽에는 9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연주산의 경치를 비추는 지석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지석강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영벽정이란 계절 따라 변모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를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주산 밑의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映碧江邊)에 있다.

 

2층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양팽손 등이 쓴 제영으로 보아 조선 명종 때나 선조 때(16세기 후반)인 것 같다. 건립자는 능주목(군), 즉 관청이 건립의 주체였었다고 생각된다.

 

인조의 모후인 인현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목사골이 되고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정자를 개수하였다고 한다. 후일 고종 9년(1872)에 화재로 인해 소실됨에 따라 다음해인 1873년 계유에 능주목사인 한치조(韓致肇)가 중건하였고, 1920년 군민의 출연으로 중수하였다. 지석강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에 있기 때문에 행락객의 완상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있다.

 

기단 위에 주춧돌을 넣고 원형기둥으로 세웠다. 이 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의 사방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장식하였고 처마 밑에는 활주를 세웠다.

 

누 위의 기둥머리에는 익공형식의 공포를 하였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을 3겹으로 한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예로 주목된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영벽정 안내문.

 

 

 

영벽정 중수기념비 및 목사한공치조영세불망비.

 

 

 

영벽정 편액.

 

 

 

영벽정 시문 편액.

 

 

 

벽정 시문 편액.

 

 

 

영벽정 앞으로 지석강이 흐르고 있다.

 

 

 

영벽정 앞으로 흐르는 지석강.

 

 

 

영벽정 측면.

 

 

탐방: 2016년 3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