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 안내판.
명승 제80호 (2011. 8. 8)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1981.10.29. ~ 2011. 8. 7.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제51호.
2011. 8. 8. 국가지정명승 제80호 지정.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며 젊었을 때는 련(鍊)이라 했고 자는 마힐(痲詰)이다.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 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각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된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 (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 면이 35m 가량 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節)이라 하였고,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 만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을 것이고 '연화부'를 지었던 소치의 사상으로도 운림(雲林)이라는 당호(堂號)가 걸맞았을 것이다.
[문의전화 : 540-6286]
운림산방 안내문.
운림산방.
운림산방.
운림산방 현판.
운림산방 대들보.
운림산방 주련.
운림산방.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집.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방.
부엌.
옛날 맷돌.
절구통.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집.
일지매.
일지매의 유래 안내 표지석.
*후기: 운림산방은 지난 2010년 4월에 다녀가며 포스팅한 바가 있으나
이번에는 운림삼별초공원을 다녀가며 재차 들렸다.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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