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달유 정려문.
任達儒 旌閭門.
전남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900 (태인길 2)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장흥 임달유지려 현판.
임달유 정려문 안내문.
임달유(任達儒) 정려문(旌閭門)
이 건물은 임달유(任達儒)의 탁월한 효행(孝行) 사실을 표창하여 길이 전하고 후세들의 귀감(龜鑑)이 되게 하고자 세운 정려문(旌閭門)이다.
공(公)의 자(字)는 영유(永有)요, 호(號)는 묵암(默巖)인데 서기 1829년(순조29) 11월 25일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리 출중(出衆)하여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부모님 입에 맞고 몸에 좋으며 마음과 뜻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봉양하였고 부친(父親)께서 돌아가시자 곡읍(哭泣)함에 있어 몸이 지치도록 하여 이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부친의 묘(墓)를 보살피기 위하여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시묘(侍墓)사리를 하였는데, 새벽 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면 산에서는 호랑이가 들에서는 귀신들이 길을 안내하며 보호해주었고 서리나 우박,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아니하고 부친의 묘를 보살핌에 한결 같았다. 또한 모친(母親)께서 노환(老患)으로 운명(殞命)의 갈림길에 있을 때에는 자신의 손을 단지(斷指)하여 선혈을 입에 넣어드리자 며칠 간 더 연명(延命)하기도 하였으며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경중을 감지하는 등 병간호에 정성을 다 하였다.
모친께서 천수(天壽)를 다 하시고 80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하시자, 예(禮)를 다 갖추어 장례를 치렀고 묘를 보살핌에도 부친상 때와 똑 같았다.
위와 같은 효행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지방 유림(儒林) 박상덕(朴相德) 등이 조정(朝政)에 건의하여 서기 1893년 정문(旌門)을 세웠다. 서기 1890년(고종27)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 되셨다.
아래는 고부 이씨 효열비입니다. 이 비는 임달유 정려문의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부 이씨 효열비.
古阜 李氏 孝烈碑.
효열부 고부 이씨 기적비.
孝烈婦 古阜 李氏 紀績碑.
효열비 뒷면.
효열비 안내문.
고부 이씨 효열비(古阜 李氏 孝烈碑)
이 비(碑)는 고부 이씨(古阜 李氏) 이동촌 할머니의 시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심과 일찍 돌아가신 남편에 대한 애틋한 열녀 정신이 뛰어나 향교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해 그 정신과 행실을 길이 전하고 삶의 본보기로 삼기 위해 세움.
고 이동촌 할머니께서는 어린 나이인 16세에 시집오시어 시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모셔오다가 22세에 후사(後嗣)없이 남편이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예를 다하여 지극 정성으로 모셨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손아래 동서와 함께 밤낮으로 길쌈을 해서 팔아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셨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양자와 손자 손녀들을 헌신적으로 길러내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해 양자와 큰손녀 사위가 그 분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훌륭한 행실을 길이 전하고 삶의 본보기로 삼기 위해 1979년 봄 이 비(碑)를 세우다.
201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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