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감천(孝感泉) 전경.
전북 시도기념물 제43호.
(1980년 3월 8일)
다녀온 날: 2019년 4월 7일.
전북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산39.
효감천(孝感泉)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샘으로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된 샘인데,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여 뇌성(雷聲)으로써 샘물을 솟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효감천(孝感泉)과 주변.
오준(吳浚: 1444~1494)은 이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고 한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서 입에 주혈하여 연명하게 하고, 종기로 신음하자 입으로 빨아내어 낫게 하였으며 상을 당하자 취령산 아래에 장사 지내고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는데 효성에 감동하여 저녁마다 호랑이가 사슴을 물어와 제전을 도왔고, 1473년(성종 4)에는 제사에 사용할 근처에 샘이 없어 들을 건너 수산에서 물을 길러와 제수로 사용하던 어느 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하늘이 갑자기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여막 아래에 샘을 이루고 물이 솟았다고 한다.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 길러 사용 중에 고을 원님이 와서 보고서 샘가에 돌을 쌓고 비를 세워주었으며 후세 사람들이 감천이라 불렀다.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왕은 오준에게 정5품의 통선랑(通善郞)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의 벼슬을 내렸으며, 1494년에는 그가 죽자 현감은 이 샘을 '효감천(孝感泉)'이라고 이름지었고, 조정에서는 공의 효행을 널리 알려 온 국민의 귀감으로 삼게 하였다.
영조 24년(1748년)에 창효사를 건립 후손들이 춘추로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
- 웹사이트 -
효감천(孝感泉)
탐방객들이 효감천 곁에 막걸리와 빵과 과자 등을 올리고 갔다.
효감천 안내문.
효감천 시비.
여기 청렬한 샘물이 / 내내 솟고 있다 / 겨레의 숨결과 더불어 / 또한 이어 흐르리라
어버이 살이 계실 젠 / 섬기는 일 다 하셨고 / 돌아가신 후도 / 받드시는 마음 생시 같으셨다
아아 吳浚 선생 / 아름다운 이 효행을 / 하늘도 끝내 느껴 워 / 이 샘물을 내셨거니
효감천 나라에 들려 / 창효사를 이룩했고 / 5백년 선비들은 / 효의 본을 삼아 왔다
취령산 솔바람 소리 / 어제런듯 맑혀 주고 / 산짐승 미물들도 / 삼가 비케 우러르네
이제라 사람들 효심을 / 어찌 아니 깨칠 건가
1978년 5월 일.
전북대학교 교수 최승범(崔勝範) 지음.
성균관 전학 남대희(南大熙) 씀.
노송(老松) 앞에 세워진 토신위(土神位)와 효감천(孝感泉) 비(碑)
효자 오준吳(浚)의 효자문.
효자 오준(吳浚)의 효자문.
孝子 除 通善郞軍資監直長 吳浚之門
효자 제 통선랑군자감직장 오준지문
1494년 (弘治七年 甲寅 홍치7년 갑인)에 세웠습니다.
효감천 뒤편 언덕에 1999년에 조성해 놓은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감천선생거여유허 비(感泉先生居廬遺墟) 碑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비(碑)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감천효행칠도(感泉孝行七圖)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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