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홍 가옥(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등록문화재 제214호.
1940년 건립.
다녀온 날: 2019년 11월 10일.
전북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 570-1 (관청1길 5)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안내문.
1940년대에 건립된 이 건물은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던 민족종교 '보천교(普天敎)'의 건물을 매입하여 해체한 재목을 활용하여 지금의 이 자리로 옮겨 주택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보천교(普天敎)가 몰락한 뒤 고부지방 대지주 조상원이 1938년 무렵에 매입하여 2년에 걸쳐 건축했다고 한다.
안채는 부엌을 중심으로 온돌방이 '田자형'으로 집약되어 있으며, 안채 앞쪽의 툇마루와 우측 마루는 'ㄱ자형'으로 연결되어 각 실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총 3동의 건물로 지은 연면적이 192.9㎡이다.
안채.
보천교(普天敎)
보천교는 차경석이 강일순을 도조로하여 일제강점기에 세운 증산교 계통의 종교이다.
1909년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이 죽고, 그의 부인 고판례(高判禮)가 흩어진 교인들을 다시 모아 1911년 일명 태을교(太乙敎)·훔치교·선도교 등으로 불리는 교단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강일순의 제자인 차경석(車京錫)이 교권을 빼앗은 뒤, 1921년 장차 세우게 될 나라의 국호를 시국(時國)으로 정하고 보화교(普化敎)를 선포한 다음, 이듬해 다시 교명을 보천교로 개칭하였다.
본부는 전라북도 정읍의 대흥리에 두었고, 서울에 포교당인 보천교 진정원(眞正院)을 설치하였으며, 각 지방의 요지에 지부를 두었다. 1929년 정읍에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는 장차 천자로 등극하게 될 것이라 하여 신도들은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로 불렀다고 한다. 건장한 체구에 뱃심이 두둑하였고, 전국에 이름이 알려져 1926년에는 당시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직접 정읍 본부로 찾아와 면담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4년부터 교단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해 1928년에는 이상호(李祥昊)와 그의 동생 이성영(李成英)이 보천교를 탈퇴해 김제 금산사(金山寺) 아래서 동화교(東華敎)를 창건하였다. 이어 1936년 교주인 차경석이 죽은 뒤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는데, 당시 헐린 서울 포교당 건물은 조계사를 짓는 데 건축 재료로 쓰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별채.
나무간.
연못.
필자가 찾은 때가 겨울철이라 연잎이 시들어 볼품이 없다.
헛간채.
노거수목을 잘라내고 둘레에 나무로 막이를 해두었다.
뒤안의 굴뚝.
장독대와 확독.
외곽에서 바라본 근대 한옥.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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