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남원.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 사적 제104호.

백산(栢山) 2021. 5. 14. 09:00

남원 황산대첩비지 전경.

 

 

사적 제104호 황산대첩비 (1963. 01.20. 지정)

 

 

▶소재지: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1 (가산화수길 84)

 

 

고려말 이성계가 삼남을 휩쓸며 약탈을 일삼는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화수산 남쪽에 1577년 세워졌다.

 

선조의 왕명을 받아 김귀영(金貴榮)의 글, 송인(宋寅)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말 조선총독부가 파괴하였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왜구는 계속하여 다음 달인 9월 남원 운봉현(雲峰縣)을 방화하고, 인월역(引月驛: 지금의 남원 인월리)에 주둔하면서 장차 북상하겠다고 하여 조정을 놀라게 하였다.

 

한편,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왜구를 토벌하여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고, 왜구대토벌작전에 나서게 하였다.

 

양측은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의 정산봉(鼎山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적들이 험지에 자리잡고 버티자 죽음을 각오한 이성계가 산 위로 올라가 적을 맞아 싸웠다.

 

그러자, 모든 군사가 총공격을 하여 일대격전을 벌여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이고 병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명 만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다.

 

비석이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비각·별장청 등의 건물을 지어 비석을 보호하도록 하였으나, 1945년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파편만 남게 되었다.

 

지금의 비석은 1957년에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1973년에 비석이 보관되어 있는 비전·홍살문·삼문·담장, 그리고 부속건물들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 문헌출처: 문화재방송 공식블로그 -

 

 

 

황산대첩비지 정문 (三門)

 

 

사적 제104호 황산대첩비지 표지석.

 

 

남원 황산대첩비지 안내문.

 

 

황산대첩기념비.

 

 

황산대첩비각.

 

 

황산대첩비 안내문.

 

 

대첩비각 현판.

 

 

황산대첩지비.

 

 

 

 

 

 

파비각(破碑閣)

 

 

파비각 안내문.

 

 

파비각 현판.

 

 

일제가 철저하게 파괴한 황산대첩비.

 

 

황산대첩사적비각.

 

 

황산대첩사적비 안내문.

 

 

황산대첩비 사적비각 현판.

 

 

황산대첩사적비.

 

 

황산대첩사적비

 

 

 

202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