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광주 광산. 월봉서원(月峰書院) & 빙월당(氷月堂)

백산(栢山) 2022. 5. 30. 09:00

월봉서원 전경.

 

월봉서원 & 빙월당(氷月堂)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1979.08.03. 지정) 

 

 

 


*소재지: 광주 광산구 광곡길 133 (광산동 452)

 

 


월봉서원(月峰書院)

 


옛날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월봉서원(月峰書院)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본관 幸州)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년(선조 11년)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 되었다가 1941년 현재 위치에 새로 지었다.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 건립에 착수하여 1981년에 준공하였다.

 

 

* 고봉 기대승 선생에 대한 자세한 부분은 아래 하단에 게재하였습니다.

 

 

망천문(望川門) 외삼문.

 

 

월봉서원 안내판.

 

 

빙월당 안내판.

 

빙월당(氷月堂)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월봉서원 강당으로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심설월(氷心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지며 주변은 소나무와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월봉서원 & 빙월당 전경.

 

 

월봉서원 & 빙월당 현판.

 

 

월봉서원 묘정비.

 

 

월봉서원 묘정비명.

 

 

동재: 명성재(明誠齋)

 

명성재와 존성재는 월봉서원의 기숙사로 동재는 명성재, 서재는 존성재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명성(明誠)은 '배움에 있어서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는 뜻이고 존성(存省)은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이다.

 

 

서재: 존성재(存省齋)

 

 

장판각(藏板閣)

 

월봉서원 내 빙월당 좌측에 있는 맞배집으로 고봉 선생 문집 11권의 판각 474매와 월봉서원강당, 충신당, 명성재, 존성재, 유영루 등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고봉 선생 문집 판각 474매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전사각(典祀閣)

 

 

정안문(靜安門) 내삼문.

 

 

숭덕사(崇德祠)

 

고봉 선생을 배향한 월봉서원 사당으로 선조 11년(1578년) 호남의 유림들이 낙암 아래 망천사를 세워

신패를 모시고 석채례를 행하여 봉향하였다. 매년 3월과 9월 초에 춘추봉양하고 있다.

 

 

고봉 선생 부부 묘소.

 

백우산 중턱 귀전암을 오르는 곳에 위치하고 정부인 함풍 이씨와 2개의 묘소로

월봉서원 서북쪽 150m 되는 곳에 있고 황룡강을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고봉 선생 묘비.

 

 

고봉 선생 부부 묘소.

 

 

고봉 선생 신도비.

 

 

고봉 선생 신도비명.

 

 

백우정(白牛亭)

 

 

교육관.

 

교육관 내에 강수당과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2011년 4월에 준공되었으며 시민과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강수당(講修堂)

 

 

유물관(遺物館)

 

 

칠송정(七松亭)

 

고봉 선생의 장자 함재(기효증 선생)공이 고봉 묘소 아래 시묘하던 곳으로, 후일 정자를 세워(1587년) 묘소를 참배하여 부모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 일곱 주의 소나무를 심어 정자의 이름을 '칠송정'이라 했다.

 

칠송정기(七松亭記)

 

 

귀후재(歸厚齋)

 

기씨 가문의 전용 서당으로 '귀후'는 '사람이 나이를 들어 학문이 깊어지면 원칙주의보다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두산 홍송을 가져와 지었다.

 

 

귀후재기(歸厚齋記)

 

 

귀후재 현판.

 

 

귀후재.

 

 

 

*다녀온 날 : 2015년 11월 15일.

 

 

 

월봉서원과 고봉 기대승 선생.

 

조선 전기의 문신인 기대승(1527∼1572)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로 새 학설을 제시하여 학계에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스승인 이황 선생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8년 간의 서신왕래는 너무나 유명하다.

 

원래 이곳은 기대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박상·박순·김장생·김집 등 조선의 명신들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월봉서원'의 강당이었다.

월봉서원은 그가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1578) 세운 것으로 정조가 '빙월당'이라 이름을 지어 내렸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앞면과 오른쪽 반 칸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1980년 새로 세운 사당과 그의 저서를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 내·외삼문이 높다란 대지 위에 서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이곳은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성리학자(性理學者)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선생(先生)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선생은 임곡(林谷) 신용리(新龍里)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고금(古今)에 통달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관계에 나가 대소 관직(官職)을 거쳐 대사간(大司諫)까지 역임하였다. 특히 스승인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을 주제로 한 8년간에 걸친 편지 왕복 논쟁은 유명하다.

 

빙월당(氷月堂) (강당(講堂))은 선생의 장자(長子)인 기효증(奇孝曾)이 선생의 위업(偉業)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조(宣祖) 40년(1607)에 지었는데 1938년 후손과 유림이 개수하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

 

정조(正祖)가 선생은 "빙심설월(氷心雪月)" 같다 하여 빙월당(氷月堂)이라 사액(賜額)하였다. 1979년 장판각(藏板閣)과 외삼문(外三門) 그리고 1980년에 사당(祠堂)을, 1981년에 내삼문(內三門)을 각각 지었다. 선생의 유집(遺集)인 『고봉문집(高峰文集)』 15권과 판각(板刻)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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