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설화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

백산(栢山) 2024. 11. 16. 05:00

온라인에서 빌려옴.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

 

신라 제17대 내물왕(356~402)이 즉위한지 35. 경인(庚寅, 390 A.D)에 일본이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앞으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표징으로 왕자 한 사람을 보내어 달라고 하므로, 셋째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보냈더니 돌려보내지 않았다.

 

또한, 19대 눌지왕(417~458) 때에는 고구려가 화친한다는 이름 아래 왕자 복호(卜好)를 보내 달라고 하므로 부득이 하여 눈물을 머금고 보냈더니, 역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에 눌지왕은 아우 둘을 남의 나라에 두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를 눈치 챈 박제상(朴堤上)은 고구려로 들어가서 복호(卜好)를 구해냈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데리러 간 박제상(朴堤上)이 왕자를 구출했지만 자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 왜왕에게 환심을 산 후 미사흔(未斯欣)을 신라로 귀국시킨 박제상은 결국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왜왕이 박제상에게 미사흔(未斯欣)을 빼돌린 이유를 묻자 박제상은 자신은 신라의 신하지 왜왕의 신하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왜왕은 왜국의 신하가 된다면 큰상을 주겠다고 하자, 박제상은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결국, 박제상은 왜왕에게 다리 가죽을 벗기고 갈대 위를 걷는 형벌, 뜨거운 쇠판 위에 세워놓은 형벌 등을 받고, 결국은 불태워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일본을 바라보며 박제상(朴堤上)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다. 뒤에 사람들은 그녀를 치술령의 신모(神母)로 모시고, 이를 소재로 지은 노래가 '치술령곡'이다.

 

 

- 전설과 설화 -

 

 

*: 울산 간절곶에 있는 공원에는 박제상의 부인과 두 딸의 석상을 볼 수 있고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70번지에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박제상 유적지

치산서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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