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으로 본 朝鮮의 奇人들 (홍유손, 어우동)
홍유손(洪裕孫, 1431-1529) 본관: 남양.
호(號)는 여경(餘慶), 소총(篠䕺), 광진자(狂眞子)
76세에 처음 장가들고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洪裕孫)
조선시대 하면 사내아이는 보통 10세를 넘으면 장가를 가게 되는데,
무려 76세의 죽을 나이에 첫 장가를 가고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인공은 홍유손(洪裕孫)
그는 소위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속세를 떠난 청담파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제주도에 유배되고 노비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76세에 처음으로 처를 맞이하여
아들 하나를 얻어 홍지성(洪至誠)이라 이름하였다.
같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자 생육신(生六臣)이었던 남효온(南孝溫)은
그를 평(評)하기를 “문(文)은 칠원(漆園) 같고, 시(詩)는 산곡을 누빈다(涉).”고 하였다.
그는 거의 기인에 가까웠으며 특히 세조가 정권을 잡은 후, 김시습, 남효온, 등과
어울리면서 세상을 비관하고 냉소로 일관하면서 풍자적인 인생을 살았다.
99세의 천수(天壽)를 누린 그는 역사 인물사전에 나오는 최장수 인물이 되고 있다.
저서로는 『소총유고(篠䕺遺稿)』가 있다.
어우동: 승문원 지사 박윤창의 딸.
조선시대 섹스심벌 어우동은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우동은 성종 때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책마다 다른데,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이라고 되어있다.
어우동의 시댁은 세종대왕의 바로 손위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어우동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는 즉시 그 자리에서
본능적인 행동을 하였고, 특히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몸에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하였다.
한국의 제3공화국 때 정인숙 LIST처럼 그는 어우동 LIST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그녀로 인해 신세를 망친 관리들이 많았으며
나중에는 도승지 김계창(金季昌)의 줄기찬 탄핵으로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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