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석성(南桃石城)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
(1964년 6월 10일)
*소재지: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149.
배중손 사당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달리니 남도석성에 이른다. 도착한 지점이 아마 남문 터? 인듯하다. 인가도 별로 많지 않아 구멍가게도 하나없는 한적한 시골 풍경 그대로였다. 일행은 남문쪽? 입구로 들어가 성벽 위로 올라서서 성곽 안쪽을 둘러보니 상당한 규모의 성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남도석성에 대한 것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남도석성(南桃石城)
지정일 : 1964년 6월 10일.
지정번호 :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
규모 : 석성 일원 (6,101평)
소재지 :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149.
안내번호 : 061-540-3226.
남도 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함으로써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 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 - 중종 연간에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종 - 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석성 본래의 규모는 그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그러나 영조때 석축 둘레 1,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성지가 거의 원형적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 서문, 남문 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다.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남도석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석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료출처: 진도군청.
쌍운교.
단운교.
쌍운교와 단운교 표지석.
쌍운교와 단운교 표지석.
성곽과 성문.
성문 입구.
이곳을 들어서 성벽 위로 올라 갈 수 있다.
성벽에 올라서다.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동문 터인 듯한데 성벽이 무너져있다.
관아(동헌) 터.
성벽을 내려서서 성안쪽으로 들어서니 육중한 고택이 나타나는데, 아마 이곳이 관아였던 것 같다.
문화재 안내판.
동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위하여...
관아(동헌)을 나서니 서문 인듯한 곳으로 통하는 길이 보인다.
성벽 안쪽으로 노란 유채꽃과 오래된 고목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도석성 안내판.
성문을 나오니 성벽 부근에 남도석성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도석성 안내문.
남도석성 만호비.
남도석성 만호비에 대한 안내문.
성벽 밖으로 서문?과 만호비가 보인다.
남문.
성 안쪽을 전부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 남은 여정관계로 원점으로 되돌아와 다음 여정지로 출발하기 위해 일행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어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이곳에서는 민생고를 해결한 지역이 되지 못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어제 먹다 남은 민어 생선회를 꺼내어 쇄주 한잔도 없었지만 맛있게 처리를 하고 다음 행선지로 GO, GO...
탐방일: 2010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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