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독충정 5

광주 남구. 고원희 가옥 (舊: 고경명 가옥)

고원희 가옥(高元熙 家屋) (舊, 고경명 가옥) *고원희 가옥은 지난 2015년 12월 6일에 다녀온 바 있으나 금번 2021년 11월 28일에 재차 방문했는데 대문에 커다란 맹견이 지키고 있으며 사납게 짖어대니 신변에 위협을 느껴 집안 촬영하지 못하고 지난 번 사진을 재차 올립니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78.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明)의 옛 집터이다. 현재의 가옥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고원희의 증조부인 고종석(高琮錫)이 지은 것이다. 지금은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이 남아있는데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사당에는 고경명과 아들 종후(從厚), 인후(因厚)의 위패를 모신 부조묘(不祖廟)가 있..

문화재 탐방 2021.12.20

광주 남구. 장흥고씨. 삼강문(長興高氏 三綱門)

장흥고씨 삼강문(長興高氏 三綱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2호.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6. 삼강문은 본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旌閭)이다. 이 장흥고씨 삼강문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그 가족 6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1충(忠), 3효(孝), 2열(烈), 1절의(節義)로 7명이 표창되어 있습니다. 1충(忠)은 고경명, 3효(孝)는 장남 종후(從厚), 차남 인후(因厚), 손자 부금(傅金). 2열(烈)은 딸 노상룡(盧尙龍)의 처와 질부인 거후(居厚)의 처 광산 정씨(光山 鄭氏). 1절(節)은 동생 경형(敬兄)이다. 1844년에 건립한 이 건물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정려의 건축 양식으로 평면은 정면 4칸, ..

문화재 탐방 2021.12.17

광주 남구. 장흥고씨 삼강문(長興高氏 三綱門)

장흥고씨 삼강문(長興高氏 三綱門) 관리자(관리단체) 장흥고씨 문중.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2호.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6. 삼강문은 본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旌閭)이다. 이 장흥고씨 삼강문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그 가족 6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1충(忠), 3효(孝), 2열(烈), 1절의(節義)로 7명이 표창되어 있습니다.  1충(忠)은 고경명, 3효(孝)는 장남 종후(從厚), 차남 인후(因厚), 손자 부금(傅金). 2열(烈)은 딸 노상룡(盧尙龍)의 처와 질부인 거후(居厚)의 처 광산 정씨(光山 鄭氏). 1절(節)은 동생 경형(敬兄)이다. 1844년에 건립한 이 건물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정려의 건축 ..

문화재 탐방 2016.01.02

광주 남구. 고원희 가옥(高元熙 家屋) (舊: 고경명 가옥)

고원희 가옥(高元熙 家屋) (구 고경명 가옥)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78.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明)의 옛 집터이다. 현재의 가옥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고원희의 증조부인 고종석(高琮錫)이 지은 것이다.지금은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이 남아있는데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사당에는 고경명과 아들 종후(從厚), 인후(因厚)의 위패를 모신 부조묘(不祖廟)가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고원희 가옥 안내문.   고원희 가옥 사랑채. 충렬공제봉종중회 간판과 세독충정의 편액이 보인다.   고원희 가옥 곳간채.   고원희 가옥 안채.   사당.   고원희 가옥 사당. 본 사당에는 고경명과 장남 종후, ..

문화재 탐방 2015.12.30

광주 남구. 의병장 고경명 선생과 포충사(褒忠祠)

포충사(褒忠祠) 입구.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  포충사(褒忠祠)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1533~1592) · 종후(從厚, 1554~1593) · 인후(因厚, 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1554~1592) · 안영(安瑛, 1564~1592)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中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 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 · 내외삼문 · 정화비 및 관..

문화재 탐방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