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운 6

전남 영암. 문화류씨. 죽봉사(竹峰祠)

죽봉사 표석비. 죽봉사(竹峰祠)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영팔정과 죽봉사는 문화류씨(文化柳氏) 문중의 사우(祠宇)이다. *주소: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영팔정 뒤편) 죽봉사(竹峰祠)는 1729년(영조 5)에 건립된 문화류씨(文化柳氏) 문중의 사우(祠宇)이다. 배향하는 인물은 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말년에 향촌에서 향촌민 교화에 힘쓴 사교당(四矯堂) 유준(柳浚:1584~1661)과 영의정을 역임한 약재(約齋) 유상운(柳尙運:1636~1707)이다. 향촌민 교화에 힘쓴 유준을 기리기 위해 향촌민들과 문인들이 1665년(현종 6)에 단을 세워 제향하다가 1729년에 죽봉사를 창건하였다. 이때 유준의 손자인 유상운도 같이 배향하였다. 죽봉사는 1868년(고종 5)에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된 ..

발길을 따라 2021.06.14

전남 영암. 문화류씨. 영팔정(詠八亭) 전남 기념물 제105호.

영암. 영팔정(詠八亭) 문화류씨 정자. 전라남도 기념물 제105호. (1987. 01. 15. 지정) *주소: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 영팔정(詠八亭)은 조선초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하정(夏亭) 유관(柳寬: 1346∼1433)이 모산리의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세거지로 택하고 아들 맹문(孟聞)에게 명하여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茅'자와 호인 하정의 '亭'자를 따서 '茅亭'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

문화재 탐방 2021.06.11

전남 영암. 영팔정(詠八亭) 전남 기념물 제105호.

영암. 영팔정(詠八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105호.(1987.01.15)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    영팔정은 현판이 2개이다.  영팔정(詠八亭)은 조선초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하정(夏亭) 유관(柳寬: 1346∼1433)이 모산리의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세거지로 택하고 아들 맹문(孟聞)에게 명하여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茅'자와 호인 하정의 '亭'자를 따서 '茅亭'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문화재 탐방 2018.10.01

전남 나주. 기오정(寄傲亭)

기오정(寄傲亭) 전경.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6호. 기오정은 백호기념관(영모정)에서 약 100미터 정도 거리의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엉성하여 다소 햇갈릴 수가 있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74-1 (동촌마을 영산강변)  나주 기오정은 영산강 강안의 높직한 대지 위에 건립되어 주변의 경치를 관상하기에 좋다. 기오정은 반남 박씨 박세해(朴世楷, 1615-1698)가 1669년(현종 10)에 처음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남 박씨는 이 지역에 시조 묘를 둔 성관이지만, 관직 등으로 이곳을 떠나 거주하다가, 17세기 중반 경에 박세해가 나주 회진에 시거(始居)한다. 박세해는 회진 시거 이후 기오정을 건립하고 문인과 교류하고 후학을 지도하면서 지냈다.  1693년(숙종 19) 7..

문화재 탐방 2015.12.10

전남 영암. 영팔정(詠八亭)

영암 영팔정(詠八亭) 전경. 전라남도 기념물 제105호.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   영팔정(詠八亭)은 조선초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하정(夏亭) 유관(柳寬: 1346∼1433)이 모산리의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세거지로 택하고 아들 맹문(孟聞)에게 명하여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矛'자와 호인 하정의 '亭'자를 따서 '矛亭'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 고경명· 남이공· 유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내..

문화재 탐방 201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