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영암. 덕진교(德津橋)

백산(栢山) 2015. 2. 24. 10:23

 

 

영암 덕진교.

 

덕진천 건너편에 '대석교창주덕진지비각'이 보인다.

 

 

소재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시기 덕진교는 지금의 위치보다 약 60m 서쪽에 있었다. 한때 덕진 석교가 일부 복원되어 있었으나 2009년 무렵 하천 공사 시 제거되고 대신 징검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이 덕진교에는 신라 때 덕진이라는 여인이 생전에 돈을 모아 두었다가 죽어서 영암의 원님에게 현몽하여 다리를 놓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덕진교의 덕진 여인 설화]
통일 신라 때 덕진이라는 여인이 지금의 영암천변에서 주막집을 운영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강진 등 남해안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교통로 중 하나로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그런데 손님들은 강에 다리가 없어 건너는 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장마철에는 하천의 강물이 불어나 목숨마저 위협했다. 덕진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다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한 푼 두 푼 땅속 항아리에 묻기 시작하여 300냥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그러나 덕진 여인은 원인 모르는 병에 걸리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면서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영암 원님이 부임해 왔다. 첫날 밤, 원님의 꿈에 소복을 입은 부인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죽은 덕진 여인이었다. 덕진 여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묻어놓은 돈 삼백 냥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날이 밝자 원님은 덕진 여인이 일러준 곳을 파보았다. 과연 삼백 냥이 발견되었다. 원님은 이 돈으로 큰 다리를 놓은 다음 덕진 여인의 이름을 따서 덕진교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덕진 여인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들은 속칭 덕진비를 세웠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덕진교.

 

 

 

현대적으로 세워진 덕진교와 옛날 덕진교.

 

 

 

덕진교 유래 안내문.

 

 

 

대석교창주덕진지비각.

 

 

 

대석교창주덕진지비.

 

 

 

서기 1992년 1월 1일 입주상량했다는 대들보.

 

 

 

덕송재(德送齋)

 

덕송재는 대석교창주덕진지비각 아래 길에 있다.

 

 

 

덕송재.

 

진여인을 기리기 위해 매년 단오날이면 덕진면장이 초헌관이 되어 이곳 덕송재에서 제향하고 있다.

 

 

탐방: 2015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