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사대독자의 살인누명

백산(栢山) 2015. 9. 24. 10:34

 

 

 

사대독자의 살인누명.

 

조선조 중엽에 아들이 몹시 귀한 가문의 삼대독자로 정홍수(丁弘洙)란 선비가 있었다. 홍수는 그 귀한 아들 하나라도 얻기위하여 유명하다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다.

 

그 공덕이었음인지 겨우 아들 하나를 얻게 되어 그 아이 이름을 정창옥(丁昌玉)이라 지었다. 창옥은 어려서부터 자라나면서 남다른 비범함에 뭇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4대독자인 귀한 아들이었으니, 그야말로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들면 날까 놓으면 깨질까 아주 귀엽게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걸승이 아이(창옥)의 얼굴을 삿갓을 쳐들고 내려보더니, "어허, 그것 참 안됐구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는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창옥 아버지는 아차 하면서 무엇인가 궁금한 생각에 그 걸승을 찾아보았지만 그 걸승은 이미 모습을 감추어버린 뒤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아이가 열 댓 살 먹게 되었을 때, 인간의 운명을 귀신처럼 알아 맞춘다는 길도사(吉道士)를 찾아갔다. 길도사는 향을 피운 방안에 향냄새가 진동하자. 주역팔괘를 응용하여 창옥의 앞날을 예지하기 시작했다. 작괘(作卦)를 해놓고 괘상(卦象)을 한참 주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예언을 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열여덟살 때에 명문가 규수와 혼례를 치르게 될 것이요. 하지만 혼례를 치르고 동침하다 급사를 하게 되니, 이 또한 한 인간의 슬픔이 아닐 수 없소."

 

이런 예언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 정홍수는, "4대 독자인 아들이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죽어 그 액땜을 할 수는 없소이까?" 하며 길도사에게 매달렸다.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정홍수가 길도사에게 막무가내로 통사정을 하자. 길도사는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간의 운명은 하늘이 이미 정해준 천명인데, 그 어찌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겠소이까?" 하며 단호하게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설령 액을 면할 수 있는 비방을 가르쳐준다 해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지키지 못하고 마는 게 또한 인간이요." 길도사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홍수는, "사람 하나 살려주시오." 하며 애원을 했다.

 

길도사는 매달린 정홍수가 안타까워, "본래 생명에 관한 비방(秘方)은 천기누설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하고 경솔하게 처신하면 반드시 천해(天害)가 있게 되오." 라고 힘주어 설명했다.

 

이렇게 비방을 설파한 길도사는 누런 종이 위에 개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접어주면서, "이 그림을 아들인 창옥이에게 주되 펼쳐보지 말고 생명이 위급하다고 느낄 때 펴보도록 하시오." 라고 지시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창옥이가 열여덟 살이 되자. 길도사가 예언한대로 혼담이 날마다 줄을 이어었다. 그 중에서 물색하고 물색한 재상딸 박선영(朴仙英)과 혼례를 치렀다. 창옥은 길도사가 시키는대로 잠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처가 집에서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별 이상한 혼례도 다 보았다." 하며 비아냥댔다.

 

그런가 하면 신부 측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혼례를 치른 신랑이 본가로 돌아가 버리자, 신부는 그대로 친정에 눌러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혼례초 부터 독수공방을 하게 된 신부는 불운하게도 삼일째 되던 날 비명에 죽고 말았다. 칼에 깊숙히 찔린 배의 상처에서 나는 피가 방바닥에 흥건하게 고였고 아래 속옷은 벗겨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창옥의 처가식구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 대성통곡을 했고 많은 사람들은, "신랑이 한 짓이 아니고, 누가 그랬겠느냐?" 며 신랑을 죄인으로 몰아 부쳤다.

 

그도 그럴 것이 물 한 모금 밥한 숟갈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신랑이 제집으로 돌아갔으니 그런 말을 듣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처가 식구들은 우선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는 신랑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형조에 고발을 하였다.

 

살인죄 누명을 쓴 채, 형틀에 매어있는 창옥은, "나는 절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고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형조판서는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바른대로 말을 하라고 주리를 틀어댔다. 너무나 엄청난 고문에 못이겨 길도사가 가르쳐준 대로 했을 뿐이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형조판서는 그것으로는 물증이 될 수 없다며 목을 쳐서 저자거리에 매달도록 지시했다.

 

창옥은 내일 날만 밝아지면 목이 댕그랑하고 끊어질 것을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옥에 갇혀 있는데, 형장에서 목을 치는 망나니가 다가와, "이놈아! 가자. 내가 오늘은 너의 목을 베는 게 하루 일과다. 그러니 죽을 놈 같으면 일찌감치 죽어야 나도 일찍 손발 씻고 처자식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러자. 창옥이는 막연하게나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쳐댔다.

"아! 바로 이거다."

 

그 언젠가 길도사께서 가르쳐준 비방이라며, 아버지가 허리춤에 간직하가고 했던 호신용 그림이란 것이 생각났다. 허리춤에 똘똘 뭉쳐 있는 그림을 꺼내 형리(刑吏)에게 주면서 형조판서에게 전달해주고 오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형리는, 그참! 별놈 다 보았네. 무슨 놈의 이런 좋지도 않은 종이뭉치를 주라고 하는 거야." 하며 형조판서에게 바쳐진 그 그림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할 때 한참동안 그림을 보고 있던 판서는 큰소리 영을 내렸다.

"여봐라. 지금 당장 가서 신부집에 있는 머슴 황삼술(黃三戌)이란 놈을 냉큼 잡아오도록 해라."고 명령했다.

 

형조판서가 펼쳐본 그림에는 누런 종이에 개 세 마리가 그려있기 때문이었다. 누런 종이는 황씨(黃氏) 성을 말하고 개 세 마리는 삼술(三戌)이 되므로 이를 종합해 보면 황삼술(黃三戌)이 되었다.

 

그리하여 머슴살이 하는 머슴중에서 황삼술을 잡아 오도록 했던 것이다. 형틀에 묶인 황삼술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실은 소인놈이 오래 전부터 죽은 이씨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오던 차에 아씨의 얼굴이 어찌나 예쁘고 품행이 단정한지 나도 모르게 홀딱 반해 언제부터인가 짝사랑을 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씨가 혼례를 치러버렸습니다. 혼자서 울분을 참지 못해 아씨방으로 들어 갔지요. 사실은 신랑 놈이 괘씸해서 죽이려고 칼을 쥐어들고 들어갔는데, 아씨께서 혼자서 속옷바람으로 주무시고 계시길래 이불 속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젖가슴을 살짝 만져 보았는데, 그순간 염치도 없는 남근(男根)이 마치 참나무 장작과 같이 빳빳하게 일어서길래 숨소리를 죽여가며 아씨 속옷을 배꼽 위로 슬슬 걷어올리고 염치없는 놈을 그곳에 대고 엉덩이에 힘을 두어 밀어넣는 순간, 아! 소리와 함께 아씨가 그만 잠에서 깨 불을 켜더니 소인 놈의 뺨을 후려쳤지요.

 

그래도. 소인 놈은 꿇어 앉아 "아씨께서 한번만 제게 몸을 섞어 주신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라고 사정했지만, "죽일려면 죽이거라."고 몸을 내밀기에 엉겁결에 칼로 젖가슴을 내려쳤습니다." 라며 살인하게 된 과정을 울먹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머슴의 목이 저자거리에 매달리고, 누명을 벗은 정창옥은 길도사를 찾아가 의부(義父)가 되어 줄 것을 사정하여 부자간의 정을 맺으니 정창옥은 길도사를 친아버지처럼 섬겨 생명의 은인에 보답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길도사는 맹인이었다고도 하는데, 길도사는 인간의 운명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진데다 그에 상응한 횡액(橫厄)을 면할 수 있는 비방에도 능통했던 사람이었다 한다.

 

 

- 고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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