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돌며

목포 시인 박화성과 세한루(歲寒樓)

백산(栢山) 2015. 12. 9. 09:00

 

세한루(歲寒樓) 전경.

 

일각문과 세한루.

 

 

소재지: 전남 목포시 소영길49번길 11.

 

 

 

목포시 용당동에는 우리나라 최초 여류 장편소설가인 소영 박화성 선생이 창작열을 불태웠던 집필실 옛 고가터에 '세한루'라는 누정으로 복원되어 자리하고 있다.

 

세한루(歲寒樓)는 목포시 동목포길 49번길. 주택가가 밀집된 일대 454㎡부지에 박화성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과 전통 한옥정자, 일각문, 전통담장, 선생의 연보와 작사하신 '목포의 찬가'가 적힌 시비를 설치 세한루 소공원을 조성했다.

 

옛 세한루 고택은 소영(素影) 박화성(朴花城 1904∼1988 본명 경순景順) 선생이1937~1962년까지 거처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1947년 첫 단편집 '고향 없는 사람들' 출판기념회 장소이기도 하다.


 

소영 박화성 선생은 1903년 4월 16일 목포시 죽동 9번지에서 2남2여 중 막내딸로 출생해 당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12세에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하고 15세에 영광중학교 교사로 교단에 선 것을 비롯하여, 일본 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여성이다.

 

일본여대 재학시에는 여성항일구국운동을 하기도 했으며.1940년경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일본어 사용 강요가 노골화되자 절필하고 낙향하여 후배양성에 전념했는데, 그녀의 문학이 민족애에 입각한 문학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1925년 조선문단에 단편 '추석전야'로 등단, 1988년 85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남겼다.

 

목포시는 '목포가 예향의 도시'로 성장하는 축을 형성한 이곳과 옛 목포 일본영사관(목포근대역사관), 남교소극장, 오거리문화센터 등과 연계한 근대문화예술벨트를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뜻 깊은 이곳에 상징적인 세한루(歲寒樓)를 복원했다.


 

- 목포문학관 & 웹사이트 -

 

세한루(歲寒樓)

 

소설가 박화성 문학의 산실과 세한루 안내문.

 

소영 박화성 선생 흉상과 목포의 찬가, 소영 선생 연표.

 

소영 박화성 선생 흉상.

 

이름: 박화성(朴花城) Park hwa sung.
아호: 소영(素影). 본명: 경순.

 
박운서와 김운선의 막내딸로 1903년생으로 1988년 1월에 생을 마감한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이다.
전남 목포에서 출생하였으며,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 1925년 (조선문단)에 <추석 전야>가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 후 <사랑> <타오르는 별> 등 많은 장편 소설을 썼다.
초기 작품은 경향 문학적 색채가 짙고, 후기 작품은 도시의 애정론을 다룬 장편 작품이 많으며,

1970년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고향 없는 사람들> <눈보라의 운하> 등이 있다.

 

- 목포 문학관 -


목포의 찬가.

 

박화성 연보. 

 

활동 및 약력. 
  
1904. 4월 16일(음) 박운서와 김운선의 막내딸로 목포에서 출생.
1915.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 졸업.
1918. 숙명여고보 졸업, 천안과 아산의 보통학교에서 교편 잡음.
1922. 영광중학교 교사로 부임. 조운(曺雲) 등 文友들과 문학수업.
1925. 단편 <추석전야>가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지에
게재되어 문단에 등단.
1926. 숙명여고보 신학년제 4년 졸업, 일본여자대학 영문학부 입학.
1929. 동대학 영문학부 3년 수료, 단편 <하수도공사> 발표.
1932. 한국여성 최초의 장편<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간행.
1933. 이후 중편 <비탈> 장편 <북극의 여명>
단편 <조혼> <고향 없는 사람들> 등의 발표 후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항거하여 각필.
1947. 첫 단편집 <고향 없는 사람들> 간행.
1955. <고개를 넘으면>(1955)을 시작으로 <사랑>(1956), <벼랑에 피는 꽃>(1957)
      <내일의 태양>(1958) 등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장편시대의 막을 열었음.
1958. 목포시 문화상 수상.
1960. <타오르는 별> <창공에 그리다> <태양은 날로 새롭다> 등의 장편을 연재.
1961. 이화여자대학교 제정 문학선구 공로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피임.
1962. 장편<가시밭을 달리다> <너와 나의 합창> 발표.
1963. 국제 P.E.M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피임 장편 <젊은 가로수> 연재.
1964. 회갑기념으로 <눈보라의 운하> 간행.
1965. 한국 여류 문인회 초대 회장에 선임.
자유중국 부인작가협회 초청으로 대만 방문.
1966. 한국예술원 회원에 선임.
뉴욕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세계연차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
단편 <증언>으로 제3회 한국문학상 수상.
1968. 한국친화회(韓國親和會) 초청으로 일본에서 문학강연회 좌담회를 가짐.
제3 단편집 <잔영(殘影)>발표.
1970. 제15회 예술원상 수상.
1974.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포장.
고희 기념으로 수상집 <순간에서 영원사이> 간행.
1977. 제4단편집<휴화산> 간행.
1984. 제24회 3·1 문화상 수상.
이후 <마지막 편지> <달리는 아침에> 등 단편을 발표.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 집필.
1988. 1월 30일 상오 6시 永眠.

 

 

담장에 새겨진 소영 선생과 작품들.

 

들국화.

 

기념수와 벤치.

 

측면에서 본 세한루의 전경.

 

 

 

탐방: 2015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