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삼천 냥 빚을 갚아준 돌장승

백산(栢山) 2016. 2. 5. 09:30

 

 

 

삼천 냥 빚을 갚아준 돌장승.

 

조선 영조대왕 때 경북 안동 고을에 <달래>라는 이름의 소금장수 딸이 살고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오순도순 잘 살아온 달래 네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않아 누워 버리면서, 남의 논을 부쳐먹고 살아오던 일마저 할 수 없게되자. 살길이 막연하여 고을 동헌에서 포흠(나라의 돈을 비리는 것)을 빌려쓰게 되었다.

 

곧 나을 줄 알았던 아버지의 병환은 차도가 없고 빌려다 쓴 포흠도 자그마치 삼천 냥으로 불어나 있었다. 어린 달래는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단 얼마라도 가사에 보탬을 주려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래의 고을에 암행어사가 내려왔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안동부사는 암행어사가 내려온다는 말에 즉시 달래네 집에 포졸을 보내어 삼천 냥의 빛을 곧 갚도록 전달을 했다.

 

당시 포흠 천냥을 갚지 못하면 국법에 의해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달래네는 별 수 없이 죽을 날을 기다려야 했다.

 

이래서 시작된 것이 달래의 소금장사였다. 그러나 소금장사를 한다고 해서 그 많은 포흠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막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달래의 처지를 동정하여 소금을 약간 사주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에 모아질 리도 없는 포흠 빚이고 보면 달래나 동네사람이나 답답할 뿐이었다.

 

이럴 즈음 안동 고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성질이 게으르고 싸움을 좋아해서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결혼도 못한 부랑자였다. 한참을 걷던 부랑자는 주막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였다. 주막에서 풍채가 좋은 백발노인을 만나 술잔을 나눈 후 안동 길 동행인이 되었다.

 

어느 마을로 들어섰을 때였다. 그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는 집에서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주인의 열 살 짜리 아들이 기절한 것이다.

 

맥을 짚을 줄 아는 백발노인은 안으로 들어가 진맥을 하더니 사내애가 지네를 먹었음을 알고 닭의 생피를 먹여 아들을 소생시켰다. 집안에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해 주어 고맙다고 크게 인사를 하며 융숭한 대접까지 하고 천냥 짜리 어음을 한 장 주었다.

 

주인과 헤어진 백발노인은 그 어음을 부랑자에게 맡겼다. 젊은이는 노인의 귀신이 곡할 재주를 보았고 거기다 거액의 돈까지 맡기니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낮쯤 되어서 주막에 들러 미인인 주모에게 [주인댁이 오늘 밤 죽을 운이네. 내가 살아날 비방을 가르쳐 주고 주인댁이 살아나면 내게 천냥 짜리 어음을 하나만 주시오!] 한 뒤에 비방을 가르쳐 주어 액땜을 하였다.

 

그 날 밤. 외간 남자와 몰래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눈치챈 남편이 몰래 숨어서 그 현장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것을 노인이 미리 알고 살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주인 여자는 노인에게 새삼 탄복을 하며 어음 천냥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집을 나선 두 사람은 해가 질 무렵 어느 산기슭에 도착했다.

 

마침, 산 중턱에 많은 사람이 모여 막 묘를 파고 입관시키려는 중이었다. 노인은 상제에게로 가서 여기는 명당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난 뒤, 오색이 영롱하게 비쳐나는 묘 터를 잡아주었다.

 

역시 그 대가로 어음 천냥을 받았다. 이리하여 삼천 냥의 어음을 벌어들인 노인은 모두 부랑자에게 맡겼다. 젊은이는 혹시 저 늙은 영감이 귀신이나 여우가 둔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노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노인은 자꾸 깊은 산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산 중턱쯤 왔을 때 노인은 소변을 보고 온다고 하였다. 젊은이는 노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노인이 사라진 쪽에서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밤중에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여자의 중얼거리는 음성을 들으니 전신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은근히 호기심이 나서 그 쪽을 보니 어떤 처녀가 石像(석상) 앞에 하얀 밥과 산나물을 올려놓고 [포흠 삼천 냥 어찌구.......]'하는 대목이 자기 주머니 속의 금액과 너무나 같았다.

 

그리고, 석상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노인의 얼굴임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그 노인은 석상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처녀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삼천 냥의 빚 때문에 밤새 비는 것을 보자, 그 정성에 감동되어 손수 빚을 마련하여 부랑자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젊은이는 노인의 마음, 아니 석상의 뜻을 잘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아 놀라는 처녀를 달래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다음 날, 두 사람은 포흠 삼천 냥을 갚고 산신의 중매로 혼인까지 하여 아들 딸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 고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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