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동자승(童子僧)의 기지(奇智)

백산(栢山) 2016. 2. 13. 09:30

 

 

 

동자승(童子僧)의 기지(奇智)

 

《강원도 설악산 울산바위 이야기》

 

산신령이 금강산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만들까?> 하고 며칠 간 궁리하던 신령을 묘안을 하나 얻었다. 1만2천 개의 봉우리를 각각 그 형체가 다르게 조각하면 훌륭한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강산에는 그만큼의 바위가 없었다. 그래서 신령은 전국 각지 산에다 큰 바위는 모조리 보내도록 엄명을 내렸다. 큰 바위들은 모두금강산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이때 경상도 울산 땅 큰 바위도 누구에게 뒤질세라 행장을 차려 금강산 여정에 올랐다.

 

원래 덩치가 크고 미련한 이 바위는 걸음이 빠르지 못해 진종일 올라왔으나 어둠이 내릴 무렵 지금의 설악산에 당도했다.

 

날은 저물고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해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에라 이왕 늦은 김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쉬어가자.』

 

하룻밤을 편히 쉬고 다음날 아침 금강산으로 떠나려고 막 한 발자국을 내디디려는데 금강산 신령이 보낸 파발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젯밤 자정으로 금강산은 이미 1만2천 봉을 다 채웠으니 오지 말라는 분부요.』

 

바위는 기가 막혔다. 어찌나 분하고 섭섭했던지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자니 길도 아득할 뿐 아니라 체면도 말이 아닐 것 같았다.

 

한참 넋을 잃고 우는 바위의 모습을 지켜보던 금강산 사자는 몹시 딱했던지 바위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이 설악산이 금강산만은 못하나 울산 땅보다야 나을 것이니 여기서 머무는 것이 어떠하겠소.』

 

이 말을 들은 바위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로 작정했다.

 

이 바위가 「울산바위」라 불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울산에서 왔으니 그렇게 부르자는 설악산의 공론에 따른 것이며, 바위 밑에 지금도 맑게 흐르는 물은 그때 바위가 흘린 눈물 탓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몇 천년이 지나 배불숭유 정책을 쓰던 조선시대였다.

 

울산바위 얘기를 들은 울산 원님은 은근히 배가 아팠다. 울산바위를 뺏긴 것도 억울한데 설악산이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답다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며칠 간 끙끙거리던 원님은 어느 날 묘책을 떠올렸다.

 

설악산 신흥사를 찾아가 스님들을 골탕먹이자는 계획이었다. 유생들이 득세하던 그 당시 스님 몇 명 골려주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 해가 으스름할 무렵 신흥사 뜰에 교자 한 채가 놓였다.

 

『여봐라, 울산 고을 원님의 행차이시다. 주지 계시느냐?』

 

포졸이 거드름을 피우며 주지 스님을 불러댔다. 신흥사 주지는 때아닌 손님에 놀라 방으로 맞아들였으나 원님은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불호령을 내렸다.

 

『이 방자한 녀석들아, 너의 설악산에 우리 고을 바위가 서 있음에도 모른 체하기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스님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원님의 다음 말은 더욱 뜻밖이었다.

 

『금년부터 바위세를 바치도록 해라. 만일 세를 내지 않을 경우 너의 절은 폐찰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엄청난 액수의 요구였으나 신흥사는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매년 꼬박꼬박 바위세를 원님에게 바쳤다. 절의 살림은 점차 어려워졌다. 새로 부임한 주지는 이 부당한 관례를 깨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나 묘안 이 떠오르질 않았다.

 

주지 스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궁리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자승이 스님의 안색을 걱정하며 물어왔다.

 

『스님, 요즘 무슨 걱정이 있으신 지요?』

 

『너는 상관할 일이 아니다.』

 

『소승에게 혹시 좋은 방안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동자승이 캐묻자, 주지 스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동자승은 그런 일쯤 가지고 무슨 고민을 하시냐며 바위세를 받으러 오거든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드디어, 원님행차가 당도했다. 주지 스님은 동자승의 말이 하도 당돌했던지라 슬며시 동자승을 불렀다.

 

『우리 절에선 울산바위가 아무 쓸모가 없소. 그 바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 곡식을 심어 수확을 올릴 텐데 매년 손해가 큽니다. 그러니 세를 받기로 한다면 오히려 우리지 당신네가 아닙니다. 금년부터 세를 못 내겠거든 바위를 당장이라도 파 가시오.』

 

동자승의 말이 한 치 빈틈없이 조리에 맞자 기세가 당당하던 원님도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냥 지고 말 수는 없는 터였다.

 

『그러면 네 말대로 바위를 파 갈 터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만들어 놓아라.』

 

『원하는 대로 해 줄 터이니 꼭 가져가기나 하시오.』

 

『좋다. 새끼를 태운 재로 바위를 묶어 놓아라. 한달 후에 와서 끌어 갈 것이니라.』

 

주지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새끼를 태운 재로 둘레가 십 리나 넘는 바위를 묶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동자승은 생글생글 웃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이튿날 마을 장정들 수십 명을 사서 새끼를 꼬게 했다. 스무날쯤 지나 새끼가 산더미같이 쌓이자 동자승은 소금을 몇 섬 물독에 풀어 새끼에다 염국을 들였다.

 

그리고 나서 청년들을 데리고 울산바위에 올라가 바위둘레를 새끼로 매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삼 일 후 다시 바위에 올라가 새끼에 들기름을 바르더니 거침없이 불을 붙였다. 기름 묻힌 새끼줄은 잘 탔지만 소금물에 절였으므로 겉만 그을려 꼭 재같이 보였다. 동자승의 기지는 놀라웠다. 감쪽같이 불에 탄 재로 그 큰 바위를 묶었으니.

 

『제 놈들이 감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원님은 약속된 날 바위세를 받아갈 마발이까지 끌고 왔다. 새파랗게 질려 세를 바칠 줄 알았는데 태연한 채, 어서 바위를 끌어가라는 말에 원님은 내심 놀랐다.

 

『이놈들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나를 놀리려 드느냐.』

 

『가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원님은 망신을 무릅쓰고 울산바위까지 올라갔다.

 

이게 웬일인가. 정녕 불에 탄 새끼로 칭칭 감아 놓은 것이 아닌가.

 

『허, 그놈들 꾀가 대단하군. 이제 바위세 받긴 다 틀렸구나.』

 

그 이후부터 신흥사는 지긋지긋하던 바위세를 물지 않게 되었다.

 

 

 

- 고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