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영광. 수은 강항선생 기적비

백산(栢山) 2016. 7. 29. 09:00

 

수은 강항선생 기적비.

 

 

영광군 불갑면 안맹리 252-3번지.

 

 

수은 강선생 맹자정 기적비

(睡隱 姜先生 孟子亭 紀蹟碑)

 

 

수은(睡隱) 강항(姜沆) 선생 기적비(紀蹟碑)

 

영광군 불갑면 안맹리 252-3번지.

 

수은 강항(1567~1818)

 

 

조선시대 유학자(儒學者)이자 애국지사(愛國志士)이신 수은 강항선생은 문장가이신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선생의 5대손으로 불갑면 유봉에서 몽오공(夢梧公) 극검(克儉)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총명하시어 52세의 생애 동안 쌓아 오신 애국심과 업적 후학정신(後學精神)을 기리고자 새긴 비(碑)이다.

 

특히 선생께서는 7세 때 맹자(孟子) 7권 1질(帙)을 하룻밤에 통달하자 책장수가 신동(神童)이라 알고 귀사(遺辭)코자 하였으나 끝까지 사양하므로 이를 정자수(亭子樹)에 매달아 놓고 갔다 하여 이곳을 맹자정(孟子亭)이라 하였다.

 

선생은 선조 27년(1593년) 27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及第)하시어 박사로 승진 공조좌랑(工曹佐郞)과 형조좌랑(刑曹佐郞)으로 재직 시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 휘하로 가던 중 형제와 함께 염산 앞 바다에서 일본으로 나포되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선조대왕께 일본의 지리와 관제를 비롯한 내정상황을 밀송하는 애국심을 발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학자로 주자학(朱子學)을 일본인들에게 전하므로써 추앙(推仰)받은 글들이 일본 국보가 되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귀국한 후에는 모든 벼슬을 마다하시고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열중하셨다. 선생의 위패를 모신 내산서원은 불갑사 방향 1km 지점에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 관리하고 묘소는 내산서원 뒤편에 안치(安置)되어있다.

 

2011년 10월  일.

 

社團法人 내산서원보존회

 

측면에서 본 기적비.

 

 

뒤에서 본 기적비.

 

*2016년 7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