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래당(歸來堂)
전남지방문화재 제21호.
1623년 최초 건립, 1996년 중건.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615-1번지(은사길 58)
귀래당(歸來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했던 풍산 홍씨 호은 홍민언(壺隱 洪民彦:1537~1626)의 강학처(講學處)이다.
홍민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제 홍민성(從弟 洪民聖)과 의병 5백 명을 모집하여 조헌(趙憲)의 진지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금산(錦山)에 도착하기 전에 조헌이 순절하자 최시망(崔時望)과 함께 운봉(雲峰)으로 진격하였다.
특히 남평 지석강 전투에 참전하여 현감과 함께 왜적 3백여 명을 베고, 포로 152명을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도 병량(兵糧)을 모집했으나 왜적이 물러감으로 의곡(義穀)을 관(官)에 바쳤다.
전란이 끝난 후 통훈대부사복사주부(通訓大夫司僕寺主簿)에 올랐으나, 계축옥사(1613)의 화를 입어 영월(寧越)에서 3년 간 귀양살이를 했다.
'귀래당(歸來堂)'이라는 당호(堂號)는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지은 것이다. 인조반정 후에 벼슬이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의병이 일어났는데, 그동안 의병에 대한 평가는 순절한 인물에 집중되어 살아남은 유공자들의 행적은 상대적으로 묻혔다.
따라서 홍민언의 사적은 지방의 역사로서 발굴될 필요가 있으며, 홍민언과 관련하여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관련 유적이나 유물은 그가 쓴「歸來堂記」현판과 귀래당 터에 중건된 지금의 건물뿐이라는 점에서 보전할 가치가 있다.
- 웹사이트 -
충의문(忠義門)
귀래당으로 들어가는 일각문(一角門)
귀래당으로 들어서는 충의문이 매우 허술하고 부실하여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귀래당 전경.
귀래당 앞 마당도 역시나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가 오래 되었는지 쓰레기와 잡동산이가 너저분하다.
귀래당 안내문.
귀래당(歸來堂)
귀래당 현판 역시 훼손되어 보기에 민망스럽다.
귀래당 현판.
귀래당기(歸來堂記)
숭의재(崇義齋)
강학당(講學堂)
마루에 먼지가 하얗게 내려 앉아 보는 이로 하여금 실망스럽다.
201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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