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강진. 창녕조씨. 효정재 & 대계사

백산(栢山) 2019. 1. 7. 09:00

 

 

강진. 효정재(孝亭齋)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7호(2012.10.26)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계율길 31-7 (계율리 717)


 

 

 

창녕조씨. 효정재.

 

 

효정재(孝亭齋)는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 717번지에 있는 건물로 창녕조씨 37世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이 세웠다. 조몽린(曺夢鱗)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그의 부친인 조일상(曺一相)이 서재동(西齋洞) 초당(草堂)에서 거처하고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기 위해 현 장소에 가정자(假亭子)를 지어 기거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효정(孝亭)'이라 하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계사(大鷄祠)의 강당(講堂)으로 쓰이고 있다. 그간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는데, 최근 1982년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정면 5칸에 양측면은 3칸으로 되어있다. 건물상태는 양호하며 최근에 써 붙인 표구된 현판에는 효정재(孝亭齊)라 하고 있다.

 

1850년 1월 대계사(大鷄祠)를 창설하여 수운 조정통(水雲 曺精通)과 그의 아들 봉강 조응룡(鳳岡 曺應龍), 청간 조한룡(淸簡 曺漢龍)을 모시다가 1860년에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을 추배하고 동쪽 방은 강당(講堂)으로, 서쪽 방은 서당(書堂)으로 1960년대까지 사용했다.

 

1899년 청명절(4.5)에 기우만(琦宇萬 1838-1916)이 효정기(孝亭記)를 짓고 1982년 8월에 기와로 바꾸어 덮었다. (조선시대:1899년 중건)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7호로 지정된 효정재는 5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효정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이에 후손들이 지난 1888년 다시 복원하고 증축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효정재에서 보관된 서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홀기(제사 때 순서를 적은 글)등이 그대로 보전돼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어 기나긴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효정재는 창녕조씨 37세 조몽린(曺夢鱗)이 1750년경에 부친 조일상(曺一相)께 저녁이면 자리를 깔아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올리면서 학업(學業)을 연마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효정재 현판.

 

 

 

효정재 내부.

 

 

 

효정재 내부.

 

 

 

계호 조선생 몽린 효행비.

 

 

 

대계사.

 

 

 

대계사 안내문.

 

 

 

대계사 삼문과 대계사 신실 중건비.

 

 

 

대계사 사당.

 

 

 

대계사 현판.

 

 

 

녕조씨 2세 효행비.

 

 

 

취정당 창녕 조공 상철 공적비.

 

 

 

최근에 보수된 효정재 축대와 돌담장.

 

 

 

20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