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고창. 덕천사(德川祠)

백산(栢山) 2019. 4. 10. 09:00

 

덕천사 입구 홍살문.

 

홍살문 옆에 덕천사 표석비와 옥천조씨 세천비가 세워져 있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441  (인천강변로 308) 

 

 

덕천사 안내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덕천사는 1818년(순조 18)에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단종 폐위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조덕린의 증조(曾祖) 조윤옥(趙潤屋), 신말주(申末舟), 장조평(張肇平) 등 3현을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복설하면서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김부(金傅), 한승유(韓承愈), 설산옥(薛山玉), 설존의(薛存義),  오유경(吳惟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옥천조씨 중추공파 종중에서 음력 9월 8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조윤옥(1430~?)은 조선 전기 단종에 대해 절의를 지킨 의절신으로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출생, 본관은 옥천(玉川), 아버지는 옥과 현감(玉果 縣監)을 지낸 조희충(趙希忠)이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단종 때 승정원 사간(承政院 司諫)으로 있다가 세조의 찬탈 뒤 벼슬을 버렸다.

 

순창의 추산(追山)에 은거하면서 세상의 영화를 헌신짝 버리듯 떨쳐 버렸다.

집에 돈세(遯世)라 편액(扁額)하고 스스로 돼지와 같은 노인이라 칭하며 끝까지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신말주(1439~1503)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나주(羅州) 출생,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 서화가 신덕린(申德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고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이다.

 

1454년(단종 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로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나 순창에 살면서  귀래정을 지어 산수를 즐겼다.

 

 

 

*장조평(1428~1501)은 조선 전기의 의절신으로 남원(南原) 출생, 본관은 흥덕(興德), 자는 자형(子衡), 호는 돈암(遯菴)이다. 증조부는 군수 장헌(張軒)이고,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장윤승(張允升)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음직으로 충순위사정(忠順衛司正)을 거쳐 1453년(단종 1)에 동몽교관을 지내다가 단종이 폐위되자 1458년(세조 4) 후릉참봉에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순창 남쪽 추산(追山)에 숨어 귀래정에서 신말주 등과 십노계를 조직하여 산수를 즐겼다.

 

 

- 웹사이트 -

 

 

덕천사 외삼문(대산문)

 

 

덕천사 내삼문.

 

 

덕천사 묘정비.

 

 

사당 덕천사.

 

 

덕천사(德川祠) 현판.

 

송기면(宋基冕)이 썼다.

 

 

강당 숭절당.

 

강당인 숭절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숭절당(崇節堂) 현판.

 

송기면(宋基冕)이 썼다.

 

 

관리사.

 

관리사에는 3대가 살고 있는지 어린아이가 밭일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부른다.

 

 

 

 

201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