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영암. 김완장군 신도비 & 묘소

백산(栢山) 2020. 1. 1. 06:19


김완장군 신도비각 전경.


전남남도 기념물 제40호.

(1979년 8월 3일: 지정)



다녀온 날: 2019년 12월 25일.



전남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205-7.



조선시대(朝鮮時代) 명장(名將)인 양무공(襄武公) 김완(1577∼1635) 장군은 영암군(靈巖郡) 서호면(西湖面) 구음평(九音坪)(지금의 몽해(夢海))에서 태어나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이복남(李福男) 장군 휘하에서 용맹을 떨쳤고, 그 후 광해군(光海君) 7년(1615) 과거에 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高山鎭節制使)를 거쳐 창성방어사(昌城防禦使)로 있을 때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平定)하는데 큰공을 세웠다.


장군은 그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三等)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封)해졌으며 뒤에 황해도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를 거쳐 사후(死後)에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묘소는 원래 해남면(海南面)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肅宗) 44년(1718) 현 장소로 이장(移葬)했으며, 신도비는 묘역(墓域)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서있는데 순조(純祖) 5년(1905)에 세운 것이다.


박세채(朴世採)가 찬(撰)하고 최석정(崔錫鼎)이 전(篆)했으며 조명교(曺命敎)가 글씨를 썼다. 높이 207cm, 너비 85.5cm이다.


신도비(神道碑)는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관리자: 김해김씨 문중.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碑)



- 우리 지역 문화재 -



김완장군 신도비.

金完將軍 神道碑.




신도비각 신축 기념비.



김완장군 신도비.

金完將軍 神道碑.




양무공(학성군) 신도비각.

襄武公(鶴城君) 神道碑閣.



김완장군 신도비.

金完將軍 神道碑.



신도비각 출입문이 넘어질 듯하여 철 구조물로 고정시켜 두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5년 1월 25일에 다녀갈 때는 문이 개방되어었는데 이번에는 잠겨져 있었다.



뒷편에서 본 신도비각.



신도비각에서 약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김완장군 묘소로 이동해 본다.



김완장군 묘소 입구에서...



묘소 입구에 김완장군 묘소 및 신도비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다.



김완장군 묘소 앞에는 김완장군의 애마(愛馬)가 묻혀있는 말(馬) 무덤이 있다.



묘소의 하단에는 김완장군이 아끼던 애마의 묘인 준마총(駿馬塚)이 있다.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장군의 애마 역시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다가 쓰러져 죽었는데, 이런 연유로 장군의 묘소 아래에 준마총을 만들어 함께 묻었다.



김완장군의 애마 무덤.



애마 무덤 앞에 준마총(駿馬塚)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김완장군 묘소.



김완장군 묘소.



김완장군 묘소 비석.


有明朝鮮 竭誠奮威 振武功臣 鶴城君 金公完之墓.

유명조선 갈성분위 진무공신 학성군 김공완지묘.



김완장군 묘소를 지키는 문인석과 망주석, 동자석.



201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