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부안. 여류명창. 이중선 묘지

백산(栢山) 2022. 10. 19. 09:00

여류명창 이중선 묘지를 찾기 위해서는 매창공원 입구에 자리한 부안생활문화센터를 지나면

우측에 영문으로 부안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는데 그곳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이중선 묘지이다.

 

*주소: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566 (매창로 89)

 

이중선 묘지.

 

 

 

이중선(李中仙)

 

판소리 여류명창

 

이중선 여류명창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의 딸로 태어났는지 아무도 잘 모른다.

그녀가 전라북도 어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920년대 이 땅의 실의에 빠진 이슬처럼 사라져 간 여류명창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뿐이다.

 

근세 여류명창의 최고봉인 이화중선의 동생이며 남동생은 고수로 활약한 이화성, 막내는 이화봉이다.

 

이중선은 언니인 이화중선과 동시대에 활약하였다.

언니 이화중선에 가려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이중선에 대한 문헌이나 관련 자료가 거의 확인되지 않아 전해지는 자료가 많지 않다.

 

소리 또한 이화중선에 비하여 시원스럽게 뻗어 나오지는 않았으나 공부를 많이 한 뛰어난 공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중선은 이화중선과 함께 1920년대 전라북도 고창군 풍류객들의 모임인 율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홍주원, 김옥진, 현 국악인 홍성덕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같이 활동한 기록이 고창군지 국악편에 기록되어 있다.

 

송순갑(宋淳甲: 1912년생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풍물예능보유자)의 말에 의하며 1932년 송씨가 스물한 살 때 임삼문 줄광대가 대동아창극단으로 함경남도 원산에서 순회공연 할 당시 언니 이화중선은 이도령 역을 동생인 이중선이 춘향 역을 맡아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이중선의 언니 이화중선은 당대 최고 여류명창으로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불러 사람들의 얼을 빼놓을 때 중선은 애절한 한이 서린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으로 우리의 한을 달래주었다.

 

중선은 언니 화중선과 함께 이 나라 방방고곡의 소리마당을 누비다가 1932년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1932년 전라북도 부안읍내 어느 집 골방에서 한 많은 생을 마치자, 나라 안의 모든 명기명창들이 소복차림으로 상여를 메고 판소리 창으로 애도하니 인근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슬픔을 함께 하였던 일은 지금도 이 고장에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 이중선의 묘비에서>

 

이중선 묘비.

 

이중선 묘역.

 

'명창 경주이씨중선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명창 이중선 묘비문.

 

명창 이중선 묘비 건립 협찬인 방명록.

 

뒤편에서 본 이중선 묘지.

 

묘지의 좌향은 동(卯)좌 서(酉)향이었다.

 

 

 

*다녀온 날: 2022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