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김제. 동래정씨. 승방서원(承芳書院)

백산(栢山) 2023. 1. 30. 05:00

승방서원(承芳書院)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아리랑로 1832-21 (흥사동 96)

전북 김제시 흥사동 승방마을에 있는 승방서원(承芳書院)이다.
김제에 입향한 동래정씨는 정인(鄭絪)으로 호는 양헌(良獻)이다.
승방서원은 1856년(철종 7) 동래정씨 가문에서 세웠는데 10여년 만에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사당 한 채와 강당 한 채가 있다.
건축물은 현대에 지은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

승방서원에는 대호군공파 3세 문간공(文簡公) 최철(崔哲)이 배향되었다.
문성공계 대호군공파 대부분이 문간공 후손이어서 문간공을 대호군공파의 비조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문간공은 대호군공파에서 중요한 조상이다.

승방서원에는 동래정씨 김제 입향조 양헌공(良獻公) 정인(鄭絪)을 주벽(主壁)으로
문간공(文簡公) 최철(崔哲)
풍천공(楓川公) 정수홍(鄭守弘)
복재공(復齋公) 정곤(鄭坤)
둔화공(遯華公) 정임(鄭任)
벽성공(碧城公) 박문(朴雯)을 배향하고 있다.

정인(鄭絪)은 경상도 초계(합천)에서 태어나 전북 김제에서 살고 있는 김제조씨 대호군 조기(趙岐)의 딸과 혼인하여 김제 동래정씨 입향조가 되었다.

최철(崔哲)은 정수홍의 외할아버지이다.
정곤(鄭坤)은 조선 초기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제공찬시병서>의 저자이다.
정임(鄭任)과 박문(朴雯)은 명성이 높지 않아서 인물정보를 찾을 수 없다.
정인(鄭絪)은 대호군이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기축옥사(己丑獄死)로 유명한 정여립(鄭汝立)도 정인(鄭絪)의 8대손이다.

<승방서원 묘정비>에는
양헌공(良獻公)이 공민왕(恭愍王) 때 강릉교주도지휘사(江陵交州都指揮使) 대호군(大護軍)으로 왜구(倭寇)를 물리쳐 불에 타고 물에 빠진 백성(百姓)을 구제(救濟)하였고 또 북(北)쪽의 여진적(女眞敵)을 무찔러 임금을 보호(保護)하고 사직(社稷)을 북돋았고 인재(人材)를 양성(養成)하는 등(等)의 공(功)을 뒤 세상(世上)에 남기셨으며, 문간공(文簡公) 최철(崔哲)은 이태조(李太祖)가 세 번씩이나 불렀어도 응(應)하지 않은 높은 절의(節義)가 있었으며, 풍천(楓川) 복재(復齋) 형제분(兄弟分)은 높은 뜻과 절의(節義)를 지켜 위로는 훌륭히 임금을 보필(輔弼)하고 아래로는 후학(後學)을 교육(敎育)하였으며, 둔화공(遯華公)은 행실(行實)을 닦고 덕(德)을 숨겨 세상(世上)에 물들지 않아 곧은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벽성공(碧城公)은 학문(學文)에 힘써 성인(聖人)의 도(道)를 높이고 이단(異端)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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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서원 외삼문.

승방서원 외삼문 뒤로 사당이 보인다.

동래정씨 대호군공파
임신보수보 사적비.

동래정씨 공적비.

승방서원 영연각(永衍閣)

영연각(永衍閣) 현판.


승방서원 사당 내삼문과 승방서원 묘정비.

승방서원 사당 내삼문과 승방서원 묘정비.

승방서원 사당의 내삼문.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 진입이 불가했다.

승방서원 묘정비 2기가 세워져 있다.

담장너머로 승방서원의 사당이 보인다.

관리사.




*다녀온 날: 2023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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