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순천. 일제강점기 명창. 송만갑(宋萬甲)선생 고택.

백산(栢山) 2023. 2. 15. 05:00

명창 송만갑선생 고택.

명창 송만갑선생 고택은 순천 낙안읍성 내에 자리하고 있다.


송만갑(宋萬甲)

송만갑(宋萬甲, 1866년 ~ 1939년 1월 1일)은 조선 말, 일제강점기의 명창이다.
전남 구례읍 봉북리 출신이다. 동편제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여기에 서편제를 가미하여 새로운 소리제를 창조하였다.

가왕(歌王)으로 불리던 증조부 송흥록, 할아버지 송광록, 아버지 송우룡 등 3대조가 모두 동편제를 업으로 삼아 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 영향으로 7세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소리를 가르치는 스승 역할을 했는데, 특히 아버지는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 매질을 하는 등 엄격한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13세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재롱으로 불러본 것이 청중을 감동시켜서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발랄한 소리를 좋아하여 자기 가문의 고매한 판소리에서 이탈하였다.[1]

판소리에서 동편제에만 구애받지 않고 경기도 향토음악제인 경제(京制)를 많이 활용하였다.
이것이 가문에서 문제가 되어 할명(割名)을 당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를 창립하였다.
서울로 올라와서 원각사 간부를 맡았으며, 이때 고종 앞에서 어전 광대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으며 감찰직을 제수 받았다. 원각사가 폐쇄된 뒤에는 궁내부 별순검 직무를 3개월간 수행하기도 했다. 충정공 민영환과 함께 중국과 미국 등지를 다닌 적도 있다.

소리로만 부르던 《춘향가》 《심청가》를 창극화하여 공연하였으며, 이동백· 정정렬 등과 함께 192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하여 제자 양성에 힘썼다.

대표적인 제자들로 장판개, 박중근, 김정문, 박봉래, 박록주, 오태석 등이 있다. 유성기 음반 87면에 다수의 판소리들을 녹음하였다.


- 위키 백과 -


판소리(동편제) 송만갑 국창 가옥 안내판.

송만갑 선생 고택.

송만갑 선생 후손들은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으며 낙안읍성 마을 노인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낙안읍성 마을 노인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관리가 다소 허술한 듯하여 보는 이의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바람에 태극기는 휘날리고 있다.

별채.

본채와 별채.

본채에 노인당 현판과 사단법인 낙안노인정 간판이 붙어있다.

그러나, 요즘은 출입이 없는지 인적이 적막하다.


노인당 현판.

노인당 보수시 헌성금 명단인 듯하다.


양로당 중건 기적비.

운강 김공 일도 공적비.

아마 노인당 발전에 공이 대단한 인사인 듯하다.


뒤뜰에 노가수 은행나무가 돋보인다.

보호수 안내판.

도 기념물 제133호로 지정된 수령 300년 은행나무.

생가 입구에 세워진 송만갑 가옥 안내판과 노인정 입구 비석.
참살이 민박집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다녀온 날: 2022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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