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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가야금병창 명인. 오태석(吳太石)선생 생가.

백산(栢山) 2023. 2. 17. 05:00

 가야금병창 명인. 오태석(吳太石) 생가.

 

오태석 명인은 낙안읍성 출신으로 생가는 순천 낙안읍성 내에 자리하고 있다.

 

 

 

오태석(吳太石 : 1895~1953)

전남 순천 출신으로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의 명인.

 

 

오태석 명인은 낙안읍성 내 순천 낙안읍 동내리 398번지에서 태어난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의 명인이다.

아버지는 명고수(名鼓手)로 알려진 오수관(吳壽寬)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박덕기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낙안읍의 이웃에 살고 있던 판소리 동편제의 대가 송만갑(宋萬甲)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또한 김창조에게서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1923년경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다음 해 가을 임방울· 김초향· 박녹주 등과 일본 콜롬비아레코드사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레코드를 취입했다.

 

1925년 그는 잠시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금암리에 내려가 이화중선(李花中仙)에게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전수하며 지방에서 활동했다.

 

19286월 빅타음반에서 단가 죽장망혜심청가심봉사 방아타령을 가야금병창으로 녹음했으며, 192911월에는 다시 콜롬비아레코드사의 초청을 받고 변혜숙· 김영환· 김초향· 박녹주· 임방울· 김옥엽· 이진이 등과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갔다. 1930년경 조선음률협회에서 활동했고, 송만갑· 이동백(李東伯정정렬(丁貞烈) 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어 기악부를 담당하기도 했다. 또 틈틈이 빅타음반 및 오케이음반과 계약하여 가야금병창과 남도잡가 등을 녹음했다.

 

1940년대 초반 그는 박귀희와 장월중선(張月中仙)에게 가야금병창을 가르쳤다. 1943년부터 반도창극단원으로서 박녹주 등과 해서·호남·영남 지방으로 공연을 다녔으며, 1945년 광주성악연회가 발족하자 박동실· 조몽실· 조상선· 공옥진 등과 창극단을 구성하고 해방 기념 지방 순회공연도 했다. 이후 대한국악원 산하의 국극사(國劇社)에 참가하여 창극을 재건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6·25전쟁 중에는 방위대에 들어가 군인들을 위한 위문활동도 했다.

 

그의 장기는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이었는데, 특히 타고난 성량과 익살 및 재담을 섞은 사실적인 사체와 너름새를 뽐내는 가야금병창은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평가받는다.

 

흥보가돈타령을 잘하였고, 심청가중 심청을 어르는 대목과 심청 모 출상하는 대목 등이 뛰어난 더늠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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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병창의 최고봉 낙안읍성 출신 오태석 명인의 생가 안내판.

 

 

가야금 병창에 대한 안내문.

 

이곳에서는 가야금 병창 감상하기와 따라하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일정치 않아서 다소 난해하기도 하다.

 

 

오태석 생가.

 

 

오태석 명인 근영.

 

 

제자 박귀희 명인.

 

 

제자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음. 

 

 

제자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음. 

 

 

낙안읍성 가야금병창 계보도.

 

오수관(1867~1927) *오태석 부친.

오태석(1895~1953)

박귀희(1921~ 1993)

오갑순.     안숙선.     강정숙.     이영애.

(1943~)     (1949~)    (1952~)    (1958~)

 

 

오수관(오태석 부친)   &  오태석 명인 약력 안내판.

 

 

제자 박귀희  &  정달영 약력 안내판.

 

 

제자 장월중선  &  오갑순 약력 안내판.

 

 

제자 안숙선  &  강정숙 약력 안내판.

 

 

 

*다녀온 날: 2022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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