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나주. 나주임씨. 창계서원(滄溪書院) 창계공 임영(林泳) 사우

백산(栢山) 2024. 1. 22. 00:01

창계서원 전경.
 
 
*주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41.
 
 
창계서원(滄溪書院)은 호남이 낳은 큰 학자 창계공(滄溪公) 휘(諱) 영(泳)의 사우(祠宇)이다.
 


나주임씨 20世 창계공 임영(林泳: 1649~1696)은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대사헌 등 청화(淸華)의 관직을 두루 거치기도 하였으나, 보다 학문에 뜻이 깊어 연구와 저술로 일생을 정진, 불후의 대업을 남긴 “일세의 참다운 선비, 백세의 본받을 스승”이었다.
 
강학(講學)이 주로 이루어졌던 호남에서 공을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아 떨어진 학(學)을 잇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공의 고토(故土)인 회진에 창계서원함평고을수산사가 세워졌으며 1770년경 창계서원을 회진에서 신걸산 기슭으로 옮기니 지금의 영성각 터이다.
 
그 후 혼란(混亂)과 전도(顚倒)의 역사를 겪으면서 훼철된 채로 있던 창계서원이 전국 유림의 소망과 성원 속에 복원사업을 추진, 드디어 2000년 4월 21일 신실(神室)과  내삼문(內三門)의 공사를 마치고 전국의 유림과 종친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예성식(禮成式)을 갖고 오늘에 이른다.
 
 
*제향일(祭享日) : 매년 음력 9월 9일.
 

- 출처 / 나주임씨 공식카페 -

 
 

임진(林晉) 장군 시조비.

*임진 장군은 백호 임제의 부친이며
제주목사를 역임한  바 있다.
 

나주 임공진 추모비
(羅州 林公晉 追慕碑)
 
 

창계공 임영 신도비.
 
임영은 자 덕함, 호 창계이며 이조정랑, 검상, 부제학, 대사헌 등을 거쳐 참판을 지냈습니다.
송시열, 송준길에게 사사한 기호학파학자였으나 이기론에 있어서는 이이의 학설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여 이황과 이이의 절충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저서로는 문집이 있습니다.
 
 
*신도비는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이덕수 글을 짓고 근현대 서예가 김응현이 글을 썼다.
 
 

창계서원 안내판.
 
 

창계서원 복원 사업협조 방명록.
 
 

나주임씨 종사기.
 
 

영성각 안내판.
 
 

창계가 소장 일괄문서 안내판.
 
(안내판 글이 많이 퇴색하여 읽기가 어렵다)
 
 

창계서원 입문.
 
(문은 잠겨 있었으나 우측으로 돌아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영성각(永成閣)
 
나주임씨들의 제실이자 창계서원의 강당이다.
 
 

영성각(永成閣) 편액.
 
 

매계영당(梅溪影堂)
 
임영의 동생 임정의 영정이 모셔진 곳.
 
 

매계영당(梅溪影堂) 현판.
 
 

건순문(健順門)
내삼문.
 
 

건순문(健順門)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건순문(健順門) 현판.
 
 

창계사(滄溪祠)
신실(神室)
 
(문이 잠겨 있어 담장 밖에서 촬영했다.)
 
 

창계사(滄溪祠)
 
 

전사청(典祀廳)
 
 

전사청(典祀廳) 현판.
 
 
 
*2023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