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나주. 나주임씨. 임서(林㥠) 신도비.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백산(栢山) 2024. 1. 29. 05:00

임서 신도비(林㥠 神道碑) 전경.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2013.11.11. 지정)
 
 
*조선시대의 청백리 석촌 임서를 기리기 위한 신도비.
 
 
 
*주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59-2.
 
 
 

 

임서 신도비 안내문.
 
 
지정번호: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소 유 자: 나주임씨 대종중.
 
소 재 지: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59-2.
규  모: 전체높이 348cm.
시  대: 1835년 건립.
 
지정년월일: 2013년 11월 11일.
 
 
 

임서 신도비(林㥠 神道碑)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59-2번지에 있으며 2013년 11월 11일 나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임서(林㥠: 1570~1624)의 신도비로 청음 김상헌(撰)하였다.
비명(碑銘)은 有名朝鮮國羅州林서神道碑이다.
 
임서(林㥠)(號)는 석촌(石村)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임평(林枰)증손으로, 할아버지임붕(林鵬)이고 아버지임복(林復)어머니남평 서열(徐說)의 딸 서씨아들로 나주 회진에서 태어났다.

 

1599년 문과에 급제한 후 공조, 예조, 병조의 좌랑을 거쳐 전라도안핵사, 무장현감을 지내고 1610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612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안동부사가 되고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폐단을 일소하고 농업의 권장과 군사의 조련에 힘썼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적을 토벌하고 군량을 보급하는 등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승계되고 임기가 만료되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제수되었다. 
 
입조(立朝) 26년 동안 출입이 깨끗하여 칭송을 받았다. 저서로 『석촌유고』 1권이 있다.
 
평생 청렴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칭송을 받았던 임서(林㥠)를 기리는 신도비(神道碑)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 웹사이트 -
 
 

임서 신도비(林㥠 神道碑)  전경.
 
오랜 세월로 인하여 비문이 많이 희미해졌다.
 
*청백리로 칭송을 받았던 임서의 신도비는
이 자리에서 영원히 빛을 발하리라.

 

임서 신도비 상단.
 
 

임서 신도비 측면.
 
 

임서 신도비 후면.
 
 

임서 신도비 측면.
 
 

임서 신도비(林㥠 神道碑) 
 
 
*한 블럭제주양씨 효열각이 자리하고 있다.
 
제주양씨는 임환(林懽)의 부인으로써 임환(林懽)의 자는 자중(子中), 호는 습정(習靜), 본관은 나주(羅州)로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의 종사관으로 일했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에게 자기 양곡 수백 석을 군량으로 제공하는 등 공을 세워 그로 인해 공조 좌랑을 지낸 뒤에 문화 현령이 되었다.
 

*다음은 제주양씨 효열각으로 이어집니다.

 
*2023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