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양씨 효열각(濟州梁氏 孝烈閣)
*나주임씨 임환(林懽)의 부인 정려각.
전남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6호.
(2013.11.11. 지정)
*주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문암길 31-1.
(가운리 산 92-1)
제주양씨는 나주임씨 임환(林懽)의 부인이다.
임환(林懽)의 자는 자중(子中), 호는 습정(習靜), 본관은 나주(羅州)로 조부 임붕, 부친 임진, 장형 백호 임제이다.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의 종사관으로 일했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에게 자기 양곡 수백 석을 군량으로 제공하는 등 공을 세워 그로 인해 공조 좌랑을 지낸 뒤에 문화 현령이 되었다.
제주양씨 효열각(濟州梁氏 孝烈閣)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산 92-1번지에 있으며 2013년 11월 11일 나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제주양씨 효열각은 정유재란 때 가족을 살리고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제주양씨를 기리기 위해 남편인 습정 임환(習靜 林懽)이 당시 거주지였던 영암 용당에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1635년 열녀정문이 내리고 1741년 현 위치로 이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제주양씨는 박산(현 광산구 박호동)에서 양산룡의 딸로 태어나 정유재란 때 순절하였다.
이때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석촌 임서(石村 林㥠)가 순절한 광경을 기록하였는데 양씨가 죽던 날 밤, 남편 임환(林懽)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죽게된 사유를 말하여 임환(林懽)이 시(詩)를 지어 슬퍼하였다.
* 습정 임환(習靜 林懽)과 석촌 임서(石村 林㥠)는 귀래정 임붕(林鵬)의 손자들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자신의 꿈과 석촌(石村)의 일기가 부합됨을 알고 1600년 정려를 세우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적 삶을 실존적으로 실천한 역사적 사실의 유산으로 보전 가치가 있다.
- 웹사이트 -
제주양씨 효열각 안내문.
효열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있다.
*효열각 소유자는 나주임씨 대종중으로 되어있다.
효열각.
효열각.
효열각.
열녀 제주양씨 지려.
열녀 제주양씨 유적비.
유적비 뒷면.
열녀 제주양씨 제단.
열녀 제주양씨 사적비.
사적비 뒷면.
*다음은 나주임씨 추원당 및 임장유 묘비로 이어집니다.
*2023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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