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40

전남 해남. 황조별묘(黃朝別廟)

황조별묘 삼문. 해남군 향토문화유적 제10호.  소재지: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381-1.신주소: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길 96-2.    황조별묘(黃朝別廟)는 명나라 수군도독으로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구원군으로 왔던 진린(陳璘)장군과 그 후손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진린(陳璘)장군은 군선 500여척과 병사 5.000을 거느리고 고금도를 비롯 녹도, 금당도 등지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왜군을 상대로 싸웠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게되자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제문(祭文)을 짓기도 하였다. 또 이곳은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永素:1644~?)가 명나라가 멸망하게 되자, 진린의 유지에 따라 중국의 광주로부터 관왕묘(關王廟)가 있는 거금도에 이주하게 된다. 그 후 진영소의 아들 석권과 유권은..

문화재 탐방 2015.01.21

전남 영광. 내산서원(內山書院)

수은(睡隱) 강항(姜沆)선생  동상. 내산서원(內山書院)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 전남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22-2번지.  내산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姜沆: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姜沆)선생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을 전하였다.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이 서원은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세웠다. 일제시대 때에도 고쳐지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

문화재 탐방 2015.01.06

전남 함평. 팔열부정각(八烈婦旌閣)

함평 팔열부정각(八烈婦旌閣) 전라남도 기념물 제8호.1975. 05. 22. 전남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 155-1번지.   팔열부정각(八烈婦旌閣) 안내문.  팔열부정각(八烈婦旌閣)은 여덟 분(정함일의 부인 이씨와 그의 딸 정씨· 정경득의 부인 박씨· 정희득의 부인 이씨· 정운길의 부인 오씨· 정주일의 부인 이씨· 정절의 부인 김씨· 정호인의 부인 이씨)의 열녀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각이다. 여덟 분의 열녀 이들은 선조 30년(1592) 정유재란 때 왜군들과 맞서 싸운 남편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피난을 가다 왜군들의 추격을 받고 칠산 앞 바다에 투신함으로서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숙종 7년(1681) 함평에 정각을 세우고 순절지인 묵방포에는 순절비를 세웠다.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

문화재 탐방 2015.01.05

전남 함평. 영파정(潁波亭)

함평 영파정(潁波亭)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68호. 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06-2번지.   영파정(潁波亭) 안내문. 영파정(潁波亭)은 세조 1년(1455)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영파정 이안(1414∼?)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건물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1450∼1460년대로 추정한다.  그 후 영파정은 함풍 이씨 가문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1597) 중에 불에 타 없어진 후 영수정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며, 1820∼1821년 사이에 군수 권복과 김상직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지었다.  그 뒤 고종 20년(1883) 크게 보수하고, 1966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

문화재 탐방 2015.01.03